도시생활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한 대신 얻은 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었다. 제주에서 가슴 뛰는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 입도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제주에서의 삶이 주는 기쁨 그리고 입도 준비자들이 꼭 알아둬야 할 주의점.
위기를 기회로 만든 40대 부부 | 틸다하우스 최해철·권현정
▲건축학을 전공한 최해철 대표의 땀과 정성이 어린 공간 틸다하우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스트레스 때문에 위염, 위경련,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으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스트레스 받는 모든 걸 버리고 왔기에 건강이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올해 1월부터 가족들과 제주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최해철(45) 틸다하우스 대표는 ‘제주살이’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표했다. 무엇보다 하나뿐인 다섯 살배기 딸 현유에게 제주에 내려와 무엇이 좋으냐고 질문했을 때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어서 좋다”고 대답했다며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인다.
▲틸다하우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권현정 씨의 퀼트 작품들.
아파트에서 살던 현유는 제주로 이사와서 맘껏 뛰놀 수 있는 너른 마당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의 세심한 배려로 틸다하우스에서 모래 놀이터와 놀이방까지 덤으로 선물 받았다. 최 대표는 지방의 한 대학을 졸업한 뒤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 1995년부터 수원에서 살기 시작해 20여 년 동안 여느 직장인들처럼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앞만 보며 살았다. 그러다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자신의 업무 분야인 건축 파트를 회사 사정상 없애면서 계속 회사에 있는 것이 미안해 지난해 9월 스스로 퇴직을 선택했다.
▲딸 현유의 영어 이름에서 따온 펜션 이름 ‘틸다’.
이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한동안 업종 간판만 보며 지냈다고 한다. 지방에 내려가 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호주 이민을 놓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복잡한 서울생활은 이 기회에 탈출하고 싶었고, 호주 이민은 비자까지 받을 정도로 적극 추진했지만, 양가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포기해야만 했다.
부부 각자의 장기를 살려 만든 아늑한 펜션
▲최해철·권현정 부부와 뒤늦게 갖게 된 딸, 현유.
이후 서울생활과 호주 이민의 장점을 절충해 택한 것이 제주였다. “제주에 정착해 사는 것에 장래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은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있기도 하지만 제주의 지속발전 가능성이 절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이면서 이국적 풍광도 있고 외국처럼 멀지 않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기에 이곳을 택했습니다.”
▲틸타하우스 내 카페. 아침에는 조식 제공 장소로, 이후 시간에는 카페로 활용되며 퀼트 작업실 역할도 겸하고 있다.
펜션 이름은 ‘여행하다’라는 의미 또한 지닌 딸 현유의 영어 이름 Tilda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최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계획도면, 토지배치도 평면을 직접 그려서 건축사에 넘겨주고 캐드 작업과 인허가만 도움을 받았다. 펜션 건축 작업 중 대부분의 작업 과정을 직접 해낸 셈. 일산에서 퀼트 가게를 하며 각종 퀼트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많은 제자를 키워왔던 부인 권현정(42) 씨도 장기를 살려 펜션 한쪽에 퀼트 카페를 차리고 펜션에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한편 여러 이불을 목화 천으로 덧입히는 등 솜씨를 한껏 뽐냈다.
▲객실은 잠자리 공간과 거실을 각각 북향과 남향으로 배치했다. 빛이 차단된 곳에서 편안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한 최 대표의 배려다. 각 객실엔 모두 세탁기가 비치돼 있다.
지난 3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7월 18일 문을 연 틸다하우스는 처음에는 지인들 위주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깔끔한 시설과 맛있는 아침 밥맛으로 입소문 나면서 이제는 지인들보다 인터넷을 보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진 상태다. 김 대표는 “앞으로 펜션이 더욱 활성화되면 이에 안주하지 않고 전공을 살려 틸다하우스 규모(1000평)의 토지를 매입해서 리조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홍대 실험예술 대가의 서귀포 정착기 | 김백기 제주국제실험예술제 예술감독
▲지난 2012년 마을미술프로젝트 작업 때문에 찾게 된 서귀포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인해 결국 제주 입도를 결심하게 됐다는 김백기 감독.
서울에서 각종 실험예술제를 진행하며 실험예술의 대부 격으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김백기(48) 감독이 서귀포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홍대 앞에서 30년가량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4~5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열하게 살아가도 해답이 없을 것 같고, 특히 결정적으로 한 방을 먹은 것이 베를린에서 한 달간 거주하면서 독일 예술가들의 삶을 보니 그들은 가난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고 즐길 것을 다 즐기면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최초로 열린 제주국제실험예술제는 대한민국 최초로 예술단체와 지역 청년단체가 함께 만든 공동의 축제다.
이어 김 대표는 “‘코파스’라는 실험예술단체를 운영하며 자정 전에 퇴근하는 날이 많지 않았고, 쉬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다 보니 부부싸움도 참 많이 했었다. 예술 활동을 하며 번 돈은 직원들 월급과 사무실 월세 내기에도 빠듯해 집에 가져갈 돈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대부분의 예술 단체 대표들이 거의 비슷한 사정이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와 함께 지방 도시의 인재들이 대도시로 몰려 여러 도시에서 공동 현상이 빚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인 전남 곡성과 재작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작업으로 인연을 맺은 서귀포 두 곳을 떠올렸다. 그리고 결국 예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이는 서귀포를 선택하게 됐고 지난해 11월 완전히 정착했다고 한다.
제주 예술 사업의 한계점과 극복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표현한 실험예술 퍼포먼스.
난생처음으로 서귀포에서 텃밭을 가꾸며 묘한 희열과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김 대표는 앞으로 서귀포에서 자연 친화적인 방향으로 예술 활동을 펼칠 꿈에 부풀어 있다. “서귀포가 휴양예술 특구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휴양에 대한 소프트웨어는 굉장히 준비가 잘되어 있지만, 문화 예술에 대한 콘텐츠나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선 상당히 취약합니다. 서귀포시는 대도시보다 자연을 최대한 아끼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곳 서귀포에서 자연과 문화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궁극적 꿈입니다.”
▲트럭 위에서 신나는 음악을 선보인 아트 퍼레이드 참가팀, ‘사우스카니발’.
김 대표는 이번 실험예술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난을 꼽았다. 서귀포에 대학이 없다 보니 젊은 인력들의 봉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다행히도 서귀포 JCI청년회의소(회장 김대훈) 회원들이 공동 주관으로 함께 작업을 거들면서 부족한 인력을 채웠다. 김 대표는 “젊은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이와 같은 일은 굉장히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며 “예술가라도 지역에 사는 주민, 청년, 농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JCI회원들이 예술에 대해 잘 몰라 서로 힘들었지만, 그동안 회원분들은 예술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예술인들은 그들을 통해 지역의 역사나 인프라 노하우 등을 짧은 시간에 공부할 수 있어 상당히 좋았다”고 덧붙였다.
구리시 토박이 초등 동창생 제주 정착기 | 흑돼지 삼형제 오인수·하정숙 부부
▲부부는 식당 건설과 음식 조리에 각각의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오인수(49)·하정숙(49) 씨 부부는 경기도 구리시 토박이로 태어나서부터 재작년 1월 제주로 내려오기 전까지 자녀들 공부 때문에 7년 동안 중국 청도에서 산 것을 제외하고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마저도 부인 하씨만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 가 있었지 남편 오 씨는 기러기 아빠로 구리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제주에서 리조트 사업을 해보려고 수년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토지를 매입했다가도 인허가를 쉽게 받지 못해 몇 번씩 해약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오인수·하정숙 부부가 은행 대출을 끼고 십수억을 들여 지은 흑돼지삼형제.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금은 제주도 리조트 사업이 포화상태라서 사업을 크게 할 게 아니면 뒤로 빠지는 상황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러다 재작년 하씨가 자녀들 유학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사업 종목을 리조트업이 아닌 식당업으로 바꿨다. 이미 한식·양식 자격증 등 요리 자격증 4개를 획득하는 등 요리하기를 좋아하던 하 씨는 이를 위해 제주도 향토음식을 더욱 알고자 제주 여성개발센터에서 진행하는 제주 웰빙향토요리 창업반을 수료하며 그랑프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텃세로 인한 마음고생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자 흑돼지 삼형제의 주메뉴인 ‘흑돼지 구이’.
이후 은행에서 빚을 내 큰맘 먹고 표선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올해 4월 30일 흑돼지삼형제를 개업했다. 지난해 8월 지금의 식당 토지를 매입하고 12월 29일 공사를 시작하면서 마음고생도 심했다. 일반 주거지역이라 건축허가를 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환경 훼손을 반대의 이유로 꼽긴 했지만 당케포구가 인근에 있는 제주도 동쪽 지역은 제주도 서쪽 지역에 비해 타지인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지역 정서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임대로 얻을 만한 건물이 마땅치 않아 부득이하게 빚을 내 건물을 지은 이들 부부로서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하정숙 씨는 제주 향토음식 조리법을 섭렵하고자 제주의 한 식당에서 오랜 시간 무임금으로 일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지역 행사에 발전기금을 내는 등 지역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풀어 갈 숙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제주시에서 1시간가량 걸려 출퇴근하는 이들 부부에게 제주시에서 사업할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제주에서 이 정도 규모로 사업을 하려면 최소 3~4배의 사업자금이 든다. 그러기엔 너무 부담이 커서 아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흑돼지삼형제는 제주 브랜드 ‘흑다돈’의 고기를 숙성 냉장고에서 최소 3일간 숙성시켜 손님들 상에 올린다.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주에 내려와 부인 하 씨의 비염과 남편 오 씨의 아토피가 자연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자연이 주는 놀라운 선물에 다시금 제주에 내려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긍정적인 부부. 이들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아이들 결혼해서 독립할 때까지 열심히 돈을 벌 겁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제일 맛있는 맛집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