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라, 실수해라, 거기서 새로운 것 나온다"

한 명은 연필, 한 명은 붓펜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그리며 두 중년은 애처럼 킬킬댔다. 30일, 두 거장이 만났다. 미국의 저명한 시사만화가 케빈 캘러허(59·이하 '칼')와 한국 만화가 이현세(60)다. 1일 현대자동차 주최 브릴리언트 토크콘서트 무대에 오를, 만화에 한평생을 바쳐온 두 사람이 '독특한 시선의 힘'에 대해 논했다. 장르와 언어를 뛰어넘어 "우린 어쩌면 형제일지 모른다"며 얼싸안았다.

1978년, 같은 해 데뷔했다. 두 사람의 만화는 모두 현실 깊숙이 발을 담근다. 36년째 매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시사만화를 연재 중인 칼은 버락 오바마, 시진핑, 김정은 등 국적 불문 전방위 풍자를 가한다. "만화의 위력은 비극을 희극으로 전복할 때다. 권력자에게 웃음을 무기로 대항하는 것, 이 조소야말로 쾌감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현세 역시 월남전을 다룬 데뷔작 '저 강은 알고 있다' 이후 '공포의 외인구단'과 '남벌'등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를 추구해왔다. "'까치' 캐릭터가 사랑받은 이유도 당대 사회상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쓴다. "구체적인 서술이 문제가 아니다. 내면의 고백이 쌓이고 쌓이면,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경험이 상상력을 살찌운다. 칼은 1977년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고, 런던 트래펄가 광장, 브라이튼 부두 등에서 관광객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돈을 모았다. 브라이튼 지역의 농구팀에 들어가 3년간 선수로도 활동했다. 칼은 "운동과 캐리커처 모두 언어가 필요 없다. 여러 인종이 섞여 감각으로 플레이하는 거다. 거기서 몸짓과 표정의 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코노미스트' 역사상 첫 전속작가가 됐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막노동판 등을 누벼야 했던 이현세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작품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다. "비루하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주시해야 한다. 모든 게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실을 긁는 쾌감은, 동시에 권력에 대한 도전을 수반한다. 필화(筆禍)의 이유다. 1984년 칼은 당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를 힌두교의 잔혹한 여신 '칼리'로 묘사한 '이코노미스트' 표지 덕에 유명세를 치렀다. "수많은 인도인이 잡지를 태우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엄청난 관심 덕에 되레 인지도가 올라갔다"며 웃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는 1998년 청소년 유해물로 찍혀 기소됐다. 먼 상고(上古) 시절을 그린 만화에서, 남녀가 나체로 등장하는 등 음란하다는 이유였다. 2003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절치부심했다. 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실수해라. 망치지 않을까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현세는 "한번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단어'라면, 숱한 실수 끝에 나온 창의성은 '문장'이다. 36년간 부딪치고 넘어지며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 된다. 칼은 2007년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렸고, 모션 캡처 기법을 활용한 시사 애니메이션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웨비소드'(Web+Episode·일종의 웹툰)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며 "작품은 대중이 가장 편하게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 새 기술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현세 역시 지난 9월 첫 웹툰 '코리안 조', 지난 10월부터 두 번째 웹툰 '굿바이 썬더'를 연재하고 있다. "웹툰 시장에 진입한다는 건, 신인들이 우글대는 '콜로세움'에 들어가는 거다. 무서웠지만, 들어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두 거장이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한 건 의외로 '마감'이었다.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와의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게 1순위"라며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