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공감, 젊은 국악 - 合하여 變化하는 저울질

우면산 자락에 검은 어둠이 쌓이는 시간으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바람의 냄새로 깊어가는 가을을 느낀다. 여름 같으면 아직도 푸른빛을 아름답게 펼치고 있을 국악원의 푸른 잔디밭에 어둠이 깊숙하게 날개를 펼치고 있다. 가을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자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분위기로 가을이 내게 다가오려나 하는 기대감이 우면당으로 걸음을 옮기게 한다.

공감! 젊은 국악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지원하고 있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끌던 공연이다. 젊음으로 이어가는 전통의 맥은 어떤 흐름으로 현대와의 접목을 시도할까라는 궁금증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오늘은 <合하여 變化하는 저울질>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공연이다.

전통춤의 계승을 위하여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이면서 댄스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김보람 선생의 춤 공연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따온 제목을 붙였다. 연암선생의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문체에서 따온 춤의 흐름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기대가 무대가 열리기 전부터 기다림을 시작한다.

소고춤(성균관대 무용과 재학생들) - 커다란 북소리가 실내를 울리고 빛깔 고운 한복을 질끈 동여맨 여인들의 화려한 몸짓이 시작된다. 작은 북 소고가 몸동작과 어우러지면서 무대와 객석이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국의 전통성이라기보다는 그네들의 몸짓과 의상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오히려 북방계열의 춤을 연상시키는 열정의 무대로 펼쳐진다. 열 명이 다섯 명씩 한 조가 되어 어우러지는 춤판은 가을의 화려한 햇살처럼 한바탕의 신명으로 풀어낸다. 무용과 재학생들이 이루어가는 무대는 신선한 역동이다.

동초 수건 춤(김보람) - 열정의 무대가 어느 기녀의 대청마루로 옮겨간 듯 화려함으로 수 놓인 병풍과 화문석이 펼쳐지고 전통의 한복 의상을 입은 김보람 선생의 고운 자태가 시선을 끌어들인다. 선생의 발놀림과 고운 춤사위에 기방 기녀들의 한이 담겨있는 듯 작고 하얀 손수건이 가을바람처럼 흔들린다.

전라도 지방의 권번이나 기방에서 동기(어린 기녀)나 초립동(초립을 쓴 어린 남자)이 추었던 수건 춤을 정리하여 안무한 것으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춤이다. 자진모리장단 없이 굿거리장단으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춤으로 장구, 징, 구음으로만 이루어진 장단에 맞춰 대청마루에서 화문석이나 돗자리를 펴 놓고 그 위에서만 춤을 추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풍정감(박상주) - 한량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는 춤이다. 벼슬에 이르지 못한 호반(虎班)들의 풍류를 대변하는 춤으로서 궁중무와는 달리 시대상을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이매방류의 한량무는 학(學)과 덕(德)을 갖춘 선비들이 젖어드는 정(情)과 흥(興)의 즉흥적인 운치로서 젊은 선비들이 지니고 있는 정서의 세계를 그려내는 춤사위의 커다란 동작으로 그 내면의 모습을 풀어내고 있었다.

사랑가(박상주, 김보람) - 하얀 안개가 무대 위로 피어오른다. 남녀 한 쌍의 정감이 무대 위에서 안갯속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몸짓과 동작으로 어우러지는 인간원형의 감정이 절절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움의 무대이다. 판소리 춘향가 중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찬사를 받았으며 멕시코 올림픽에서 ‘연가’라는 작품으로 멕시코 올림픽 문화축전 공연에서 전승되어 추었던 춤으로 세계의 어느 문화와 비교되어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흐름의 정감이 손색없을 만큼의 표현력이 뛰어난 무대로 이어진다.

동래학춤(김태운, 김서량, 김진우) - 하얀 도포 자락을 날리면서 무대가 열리기 시작한다. 한 마리 학이 되어 날아가는 가을밤이다. 발동작과 손동작 그리고 목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동작의 흐름이 학의 우아함으로 배김사위와 춤의 상징성을 지니고 학이 되어가는 흐름의 공감대로 이어진다. 바라보는 나의 내면의 자아가 함께 무대 위의 한 마리 학이 된다. 궁중에서 학 탈을 쓰고 학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학춤과는 달리 춤꾼들이 도포를 입고 추는 춤으로 춤꾼의 흰 도포 자락은 하늘을 향하는 학의 날갯짓을 이어간다. 1972년 9월 1일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호남 살풀이 춤(김보람) - 한 폭의 미인도를 보는 느낌으로 그녀가 풀어가는 유연한 손의 흐름과 전체적인 몸놀림의 춤사위가 깊은 호흡과 허공을 나르는 학의 모습 같은 이어짐으로 타고난 춤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방 예인들의 ‘무무’ 형태인 민속예능에 뿌리를 두어 맺고 풀어주는 가락에 혼을 담아 휘몰아치는 고운 선의 흐름은 한 폭의 난을 쳐가는 붓의 흐름처럼 간결함으로 다가온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장구품(김연지, 정소연, 최희아, 양지현, 성은혜, 김보람) - 전통의 한복과는 다르게 장구춤의 의상은 북방계열의 의상을 접목한 듯한 역동을 지니고 있다. 폭 좁은 소매 선이 이루어내는 선의 흐름이 완벽의 유연함이다. 장구와 함께 돌아가는 팔은 무용수의 신체라기보다는 장구와 함께 춤의 도구로서의 율동을 이루어간다.

역동적인 흐름이 이어가는 여인네들의 향취와 한국적 매력이 함께 시도되는 마무리로서의 생동감이 설장구의 조화를 이루어간다. 장구는 우리 고유의 악기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악기로 궁편과 채편의 운율이 음과 양의 다른 소리를 내어 조화를 이루어가는 흥과 멋의 상징으로 꼽히고 있다. 오래전의 전통과 현재라는 시간이 함께 만나는 친숙함으로 풀어가는 시간이었다.

열하일기로 풀어가는, 연암이 지닌 변화의 저울질은 친숙함과 낯섦으로 인간이 풀어가는 생의 여행길에서 최고의 경지로 바라본 변화의 시간이 열하일기의 어떤 내용으로 풀이되었을까 하는 것이 무대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게 하였다.

무대의 주인공 김보람 선생은 연암을 좋아한다는 글을 팸플릿에 남겼다. 이국땅의 한 점포에서 벽에 쓰인 <호질>을 촛불 아래 열심히 베껴 쓰는 연암을 보고 점포 주인이 뭐에 쓰려 하냐고 물어보자 조선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한바탕 배꼽 잡고 웃게 하고프다는 대답을 하였던 연암이다.

연암 선생이 아끼고 사랑하던 웃음의 물결이 삶에 무르녹아 열정적인 해학의 무늬들을 이루어간다. 그가 이루어가는 생의 여행길에서 열하일기는 미완의 텍스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완성의 결여가 아닌 완결의 세계를 거부하는 수많은 의미로 하여 새로운 생성을 이루어가고 있음이다, 연암이 펼쳐가는 에피소드에는 그의 진솔함이 생성으로 이끌어가는 유머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의 유머 속에는 항상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연과 결부시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학춤을 추는 김태훈 선생의 동작 하나하나와 살풀이춤을 이어가는 김보람 선생의 동작의 유연성에서 이루어지는 한 호흡의 일치감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춤꾼으로서의 재능이 필요의 조건일 수도 있었겠으나 그 재능을 완성의 단계로 이끌어가는 나라는 존재감의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어느 상황에서도 어디에서도 나의 존재감이 없이는 이루어내지 못하는 완성의 시간이 노력과 땀의 결정으로 이루어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호질의 내용을 베끼고 그것들로 하여 한바탕 웃음의 마당으로 끌어내려는 연암의 진솔함과 세상을 향하는 긍정의 시선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호흡하고 노력하면서 이끌어 낸 춤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함께 바라보며 함께 느껴가는 가치의 공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감이 없이는 이루어내지 못하는 시간의 결정체로서 이 세상에서 이루어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가치가 이루어가는 끝없는 생성의 결과가 무대의 충만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춤으로 이어지는 역동의 시간이 연암의 웃음과 해학으로서 변화되어 만나지는 진솔함과의 일치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