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았던 차별, 다문화 아이들은 겪지 않길"

"다문화(多文化) 가정에는 편견과 차별이 아닌 사랑과 이해가 절실합니다. 모두가 존중받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건전한 다문화 사회가 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섭씨 영하 5도 강추위가 몰아친 2일 저녁 '2014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는 온기(溫氣)가 넘쳤다. 20여개 테이블에 둘러앉은 250여명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과 부모들은 정(情)이 담긴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펄벅재단의 류진 이사장(풍산그룹 회장)도 환한 얼굴로 테이블을 돌며 환담(歡談)을 나눴다.

"꿈이 뭐니?"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저는 피아니스트요."

류 회장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어?"라고 묻자 다문화 가정 여중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인피니트요" "블락비요" "아이유요"라고 앞다퉈 대답했다. 류 회장은 웃으면서 "약속 꼭 지킬게"라고 답하고는 명함을 나눠줬다. "아저씨가 잊어버릴지 모르니 연락하고."

류 회장은 이날 후원의 밤 행사 환영사에서 "세계가 빠르게 글로벌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은 어머니, 아버지 나라 모두의 문화 잠재력과 역량을 지닌 세계 시민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귀중한 인재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교 1학년 때까지 일본에 살며 느낀 차별의 경험이 지금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낯선 일본 어른들이 '아빠가 불고깃집을 하느냐 파친코를 하느냐' 물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됐겠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울컥해요. 우리 사회 많은 다문화 가정 친구들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다시 경험하지 않게 하려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겁니다."

류 회장은 이날 사재(私財) 1억원을 한국펄벅재단에 기탁했다. 그는 2012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삼성·영유통·고려아연·한솔·휴니드·효성·롯데·삼양사·종근당·LS전선·한화 등 20개 후원사가 1억원을 더 보태 모두 2억원 후원금이 마련됐다. 류 회장은 "오늘 행사 후원금이 따뜻한 나눔의 시작이 돼 다문화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이웃 사랑을 더욱 활발히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2007년부터 한국펄벅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펄벅재단은 사회의 냉대와 멸시 속에 힘들어하는 다문화 가정 아동을 돕기 위해 소설 '대지(大地)'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1965년 세운 사회복지법인이다. 이날 후원의 밤은 한국펄벅재단 청소년공부방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워온 고교생 김하경양이 '감사의 글'을 낭독하면서 숙연해졌다. "부모님의 출신 국가는 다르지만 우린 다른 가족과 다른 게 없다.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가르쳐 준 재단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하는 김양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로 구성된 관현악 앙상블이 '행복을 주는 사람'을 연주하자 류 회장은 나직이 따라 불렀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필리핀 출신 어머니 6명이 화려한 모자를 들고 전통 무용을 공연하고, 태국 전통 현악기로 아리랑이 연주되자 후원의 밤은 한껏 달아올랐다.

류 회장은 앞으로 다문화 가정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들의 취업 문제에도 관심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또 베트남·필리핀 등 고향 방문 행사도 계속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수십 차례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넨 류 회장은 "편견을 거둔 따뜻한 가슴으로 화합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든든해요"라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 얼굴을 보면 알아요. 우리 사회가 그래도 점점 좋아진다는 걸. 아이들 표정이 더 맑아지고 저렇게 팔팔하게 에너지가 넘치잖아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