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눈물이 난다… 국내 주식형 펀드

"돈 벌어달라고 수수료 내가며 내 돈 맡겼더니만, 돈 잃어놨네요. 이자율 낮아도 그냥 안전하게 은행에 맡기는 게 제일이라던 남편 말 들을 걸 그랬어요. 후회막심입니다."

주부 정모(35·서울 영등포구)씨는 올 초 학원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하면서 생긴 수입을 알뜰히 모아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가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은행 창구 직원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만 골라 투자하는 안전한 펀드라서 많이들 든다"며 권하기에 돈을 넣기 시작했지만, 현재 이 펀드 수익률은 -7%대를 기록 중이다. 수수료와 보수로 떼가는 돈(원금의 평균 1.5%)을 감안하면 원금의 8.5%를 잃은 셈이다.

정씨뿐 아니라 대다수 펀드 투자자가 연말을 앞두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과 함께 올해 펀드 투자 성적표를 결산해보니, 2665개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연초 이후 지난달 25일까지 평균 -3.31%의 저조한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1.63% 떨어졌지만, 나름대로 유망한 주식들을 골라 간접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률은 이보다 더 나빴던 것이다. 수수료를 줘가면서 전문가한테 운용을 맡긴 게 허무할 지경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가뜩이나 펀드 시장에서 떠나가는 투자자들을 붙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자산운용사들로선 면목 없는 상황이 됐다.

◇마이너스 주범은 삼성전자·현대차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들의 투자 성적이 나빴던 것은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시가총액 비중이 큰 국내 대형주들의 주가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펀드 세부 유형별로 수익률을 들여다보면, 펀드매니저가 직접 투자 대상을 고르고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인 '일반 주식형' 펀드 성적이 -3.0%였다. 특히 시가총액이 크고 거래가 활발한 상위 200종목을 꼽은 '코스피200' 지수에 연동하는 'K200 인덱스' 펀드 성적은 -4.82%로 상당히 나빴다. 경기 침체와 엔저로 대형주들이 죽을 쒔던 여파가 고스란히 미친 것이다. 분석 기간에 삼성전자 주가는 9%, 현대차 주가는 22.5%나 하락했다.

'미래에셋 TIGER(타이거)200 상장지수' 펀드나 '삼성 KODEX(코덱스)200 상장지수' 펀드처럼 설정액이 1조원 이상인 국내 대표 펀드 중 상당수가 코스피200지수의 흐름을 추종하는 것들이라, 마이너스 수익을 면치 못했다.

또 '한국투자 삼성그룹적립식'이나 '삼성 코리아대표', 'KB 한국대표 그룹주', 'JP모간 코리아트러스트', '한국투자 한국의 힘' 같이 삼성그룹주나 국내 업종 대표주식을 골라 투자하는 공룡 펀드들도 올해는 일제히 -3%에서 -10%대 수익을 기록했다.

반면 중소형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10.86%)나 배당주 펀드(+7.26%)는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거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가장 많은 돈을 모은 '신영밸류 고배당' 펀드는 올 들어 9.4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1주당 가격이 2만5000원보다 싼 저가주 위주로 골라 투자하는 '현대인베스트먼트 로우프라이스' 펀드는 22%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해외펀드 짭짤했지만 투자금은 감소

해외로 눈을 돌렸던 투자자들은 돈을 잃지 않았다. 해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5.18%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일본·중국·인도·대만 등 해외 주가가 연초 대비 상당폭 오른 덕분이다.

특히 '모디노믹스' 호재가 있었던 인도에 투자한 펀드는 펄펄 날아, 올 들어 평균 45.5%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다만 우크라이나와 분쟁 중인 러시아나 경기침체가 심각한 유럽 신흥국에 발을 들인 불운한 투자자들은 두 자릿수 원금 손실을 겪어야 했다.

국내 주식형만큼 망한 펀드가 있다면 옥수수·금·원유 같은 원자재에 투자한 펀드들이다. 원자재 펀드의 올해 평균 수익률은 -5.7%로 저조했고, 특히 원유 펀드는 유가 폭락세 때문에 -23%(WTI 현물 펀드)의 상당한 손실을 봤다.

전문가들은 연초부터 국내보다는 해외 펀드가 유망하다고 꾸준히 외쳐왔고, 실제 수익률도 좋았지만, 해외 펀드에선 어쩐 일인지 올해 3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갔다. 왜 그랬을까. 유안타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국내 투자자들이 편애했던 해외 펀드 상당수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투자 펀드로, 여기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았던 투자자들이 최근의 회복세에 투자금을 회수해가는 것”이라며 “최근엔 미국 등 선진국 위주의 장세(場勢)가 펼쳐지고 있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오랫동안 저조했던 펀드 성적표에 질려서 직접 해외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해외 펀드 설정액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