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노리는 돈 14조… 株價 전망은 엇갈려

지난 주말 회사원 이혜정(37·서울 강남구)씨의 대학 동기 송년 모임에선 제일모직 청약이 뜨거운 화제였다. 지난달 삼성SDS 공모주를 배정받은 한 친구가 상장 당일 바로 팔아 단숨에 수백만원의 차익을 챙겼다고 자랑한 게 발단이 됐다. 이씨는 "평소 재테크에 전혀 관심 없던 친구들까지 제일모직 청약 얘기에 동참하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며 "안 하면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라 서둘러 청약 가능한 증권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공모주 청약(10~11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투자자들의 막판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데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가장 높은 회사라는 특수성에,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라는 시의성까지 맞물려 투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SDS만큼 뜨거운 열기

제일모직이 공모에 내놓은 물량은 삼성SDI·삼성카드·KCC가 내놓은 구주 1875만주와 신주 1000만주다. 이 중 기관투자자가 60% 물량을 가져가고(하이일드펀드 배정물량 10% 포함), 우리사주조합(우선배정)과 일반청약자가 각각 20%를 배정받게 됐다.

지난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미리 열린 수요 예측에서는 총 849곳의 기관이 참여해 단순 경쟁률 465대1을 기록했다. 공모가격은 주당 5만3000원으로 결정됐다.

일반투자자의 청약 경쟁은 상당히 치열할 조짐이다. 삼성SDS 청약에 참여했다 주식을 배정받지 못한 14조원가량의 청약 자금 중 상당수가 제일모직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10~11일 청약을 받는 대표 주관사인 KDB대우증권과 공동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 인수사인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대투증권, KB투자증권 등 6곳에서는 청약 대기 자금이 줄을 잇고 있다. KDB대우증권 측은 "이달 들어 신규 고객 수가 평달 대비 20% 늘고, 기존 고객의 계좌 잔고도 150~350%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 중 상당수가 제일모직 청약 증거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고객 1인당 청약한도는 대표주관사인 대우증권이 10만5000주로 가장 많고 우리투자증권 8만5000주, 삼성증권 6만주, 신한금융투자·KB투자증권 1만3000주, 하나대투증권 1만2000주 순이다.

제일모직 청약 경쟁률이 삼성SDS와 같은 수준(134.2대1)이라고 가정할 때, 대우증권 일반고객이라면 청약증거금 356만원당 1주를 배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엇갈리는 주가 전망… 묵혀야 이득?

그런데 전문가들의 주가 전망이 투자자들을 막판까지 멈칫하게 하고 있다. 삼성SDS 때는 10곳이 넘는 증권사가 공모가격 대비 2배 이상인 목표주가 전망을 쏟아냈지만, 제일모직에 대해서는 8일 현재 단 3곳만 목표주가를 제시하고 있다. LIG투자증권과 KTB투자증권이 7만원, 키움증권이 9만1000원으로 가장 높게 보고 있다. 이마저도 공모가격(5만3000원) 대비 2배에는 못 미친다. 한결 신중한 분위기다. 왜일까.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도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지배구조 때문에 실제 회사 가치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얘기도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제일모직의 공모가격을 1년 뒤 주당순이익 전망치로 나눈 비율은 34배에 달해, SK그룹 지주사인 SK C&C(4.6배)나 현대차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글로비스(11.9배)보다 훨씬 높다고 KTB투자증권 오진원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럼에도 향후 지배구조 개편 때 삼성전자를 분할하고 나서 제일모직과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드는 시나리오가 유효하다면 제일모직의 회사 가치는 갈수록 더 뛸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가 높게 유지돼야, 오너 일가가 주식을 덜 희석하면서 지배권을 더 공고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회사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삼성SDS와 달리 제일모직은 장기 보유하는 전략을 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