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투철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있다. 소박한 농촌살이보다는 커다란 마을을 키워나가는 꿈. ‘농업의 6차산업화’를 지향하며 오디와 복분자, 야콘, 둥근마, 블랙베리와 함께 일궈나가는 원대한 꿈. 그 꿈은 문응주. 그만이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었을까.
웰빙농산물로 마을을 살리다
마을 전체에 마 냄새가 퍼져있다. 매년 11월이면 마을주민들과 함께 ‘둥근마축제’를 연다는 문응주씨 덕에 마을은 차가운 가을바람에도 찾아온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울 뿐이다.
농업으로 6차산업을 일군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고향마을을 살리고 있다는 문응주씨. 그가 고향에 돌아온 지도 벌써 9년째. 그는 고향마을 주민들이 생각지 못한 웰빙농산물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문응주씨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무엇을 해야 내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온 첫 번째 이유는 부모님의 잦은 병치레로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으니, 무엇보다 부모님의 건강을 위한 농사를 지어보고자 결심했다. 20여년의 서울생활에서 배운 유통경험을 바탕으로 웰빙농산물에 승부를 걸어보고자 했다. 복분자를 시작으로 오디, 야콘, 둥근마, 꾸지뽕 등의 농산물을 차례로 재배하며 그는 서울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만끽하게 됐다.
그는 여러 가지의 특화작물을 생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농산물을 찾는데 주목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몸에 좋은 농산물을 섭취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가공과 유통까지 직접 실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문응주씨는 농장을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농장의 주력상품인 오디와 복분자, 야콘의 이름을 따 ‘오복야 시골가자’라는 브랜드가 탄생되면서 6차산업에 대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오디와 둥근마를 주력상품으로 내놓는 문응주씨는 1만5천여평의 토지에서 생산한 작물들을 직접 가공한다. 오디즙, 복분자즙, 야콘즙, 둥근마즙, 둥근마 가루 등의 가공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그는 매년 가을, 둥근마축제를 열며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6차 웰빙농산업과 힐링을 접목한 둥근마축제는 지역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이 화합을 다지는 만남의 장이자 오복야 둥근마를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오복야네와 함께 참여하는 20여 농가의 둥근마는 여러해동안 시험재배과정을 거쳐 일반인에게 보급하고 있는 효자소득작물로 손꼽히고 있다. 4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재배하는 둥근마는 판로만 확보하면 벼농사의 5배 이상은 거뜬히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단년생으로 재배가 쉬우면서도 수확략이 월등히 높고 병충해가 거의 없어 친환경 재배또한 가능한 상품이다.
“최근의 농업은 단순한 생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을 통해 소득과 연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농 후 둥근마 재배를 추진한 것은 타작물에 비해 수익이 높기 때문이지요. 귀농한 젊은 농사꾼이 둥근마농사를 한다고 걱정하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벼 위주의 농사보다는 높은 소득을 올린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드려야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도 효과적입니다. 특히 체험과 축제는 우리 농산물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홍보수단이 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귀농,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
승승장구하는 지금이 있기까지 사실 귀농의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맨 처음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서울에서 전문직업을 가진 그가 나름 잘 살고 있다 생각했고, 양호교사로 근무하던 아내 역시 그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고집한다는 남편의 결심은 그대로 굳어졌고 먼저 정읍으로 내려와 있던 남편을 따라 아내 역시 귀농행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마을엔 부모님이 계시니 믿을만한 버팀목이 되었다. 사실, 그 버팀목만 있으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방법의 차이가 커서였을까. 귀농 후 2년간은 갈등과 손실만으로 하루하루가 꽉 차며 지나갔다.
귀농 첫 해, 그는 복분자와 오디는 물론, 땅콩까지 섭렵해 보았다. 그러나 농사는 무조건 덤비기만 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농사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했던 그에게 자연의 이치 또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병충해로 인해 막을 내린 복분자, 기후와 토질문제로 착오를 겪은 야콘, 강추위에 썩어버린 둥근마 농사까지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농사를 배워나갔다.
반복되는 실패는 가족모두의 시련으로 다가왔고, 시련은 갈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가 하고자 하는 농업에 대한 의지역시 마을주민들 눈에는 탐탁지 않았다. 논에 오디농사를 짓는 그를 보고 주민 대부분은 못 미더워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여보게 응주. 논에 나무를 심어 쓰겄는가.”
“서울에서 내려오더니, 암것도 모르는구만. 우리 마을에선 오디농사라곤 지어본 적이 없어!”
실패를 배움으로 여긴 문응주씨는 주민들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이웃주민의 조언이라 생각해 한마디 한마디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갔다.
그렇게 천천히 농장의 그림이 그려지고 채워지면서 주민들 역시 그의 선택을 믿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신뢰와 자신의 의지가 합쳐지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제는 마을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의 진심이 닿아서였을까. 2012년, 그는 마을의 첫 귀농인통장이 되었다. 귀농인이 통장이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마을로서는 모험이었을 테지만 그만큼 주민들과 그는 신뢰로 다져져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귀농귀촌인이라면 무조건 마을과 함께 가야하고 주민들과 친해져야 합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먼저 노력해야만 하지요. 마을 안에서도 주민끼리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소한 분쟁부터 시작해 마을사업 운영까지 갈등거리가 되는 소지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귀농귀촌인이 끼면 문제가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고 주민들과 함께 섞여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선 영원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지요.”
미래를 바라보는 직업 '농부'
문응주씨는 농촌으로 온다는 것은 인생을 새로 결정짓는 거나 마찬가지라 말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크게 일을 벌릴 필요없이 찬찬히 지역을 알아가고,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찾아 조금씩 농사를 지어보는 게 좋다고 한다.
“농사는 생각한 만큼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 거듭되는 실수와 실패로 인한 손실, 기후와 토질 등으로 인한 시행착오 등 농부로 겪을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패를 겪으면서 농사에 대하여 하나씩 터득하게 되고, 훗날 좋은 경험치로 남을 것입니다. 농장을 일구고 재배면적이 넓어지면서는 가공도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가공이란 것은 일반 가공업자와는 다른 잉여농산물 활용과 연중판매가 가능한 가공품을 말합니다. 특히 체험과 축제는 소비자에게 자신의 농산물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홍보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농부는, 미래를 바라보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멘토가 절실하고, 협력 속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틀도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되고, 사람이 해결한다. 문응주씨도 농촌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젊은 귀농인들이 농촌에 많이 오기를 희망한다. 때문에 그는 마을통장으로서 적극적으로 귀농귀촌인을 유입해 조용했던 시골마을을 활력이 넘치는 마을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안겨주었다. 각자의 역량을 모으기 위해 마을 로그와 지도를 만들어보고, 선진마을견학과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마을주민들이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저희 마을은 2012년 정읍시 창안대회 마을부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4천만의 지원금도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원금으로는 귀농귀촌아카데미를 만들어 마을청장년회의 교류장소와 관련교육장소로 쓰이고 있지요.”
문응주씨는 보다 더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전북에 와서 살길 희망하며,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농장에 체험교육장을 신설했다. 귀농귀촌은 말과 이론보다 행동과 실천이 앞장서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복야 체험교육장’에서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교육장에선 농작물 재배기술을 알려주고, 인근 농가와 융화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귀농귀촌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계획이다.
“저는 저희 교육장이 귀농귀촌인들의 그늘 같은 쉼터가 되어주길 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저와 같은 귀농귀촌선배들은 숲이 되어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초석이 되어야하지요. 이에 맞춰 귀농귀촌인들은 한 마을의 주민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작지만 강한 농업, 즐겁고 행복한 농촌, 경쟁력 있는 마을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농산물은 수입할 수 있어도 농촌은 수입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농부와 함께하면 가족이 행복합니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