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도산서원 원장인 이윤기(82) 전 해외한민족연구소장은 서원이 있는 경북 안동에 상주하지 않는다. 교통이 좋아져 서울에서 안동 가기가 쉬워진 것도 이유지만, 향사례(享祀禮·서원에서 성현들에게 올리는 제사) 외에도 원장으로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도산서원 등재를 추진하고, 해외에 퇴계이황연구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가 아직 살아 숨 쉬는 곳이 도산서원입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고, 동시에 세계에 우리의 정신세계를 알릴 교두보지요."
이윤기 도산서원장은 “우리의 고유 자산을 바탕으로 경제 영토와 문화 영토를 확장해 가자”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도산서원은 1574년 퇴계의 학덕을 추모해 유림(儒林)이 설립한 서원으로, 영남(嶺南) 유학의 본산 역할을 맡아왔다. 헌법학자 유진오, 경제학자 조순 전 서울시장 등이 원장을 맡았었다. 지난 6월 유림 인사들로 구성된 도산서원 운영위와 퇴계 종손 이근필씨 측이 그에게 도산서원을 맡아달라고 했다. 25년간 해외한민족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중국·러시아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에게 민족의식과 자긍심을 심는 사업을 추진해온 점을 높게 샀다.
이 원장은 1990년대 '고구려 신드롬'의 주역이다. "11대 야당 국회의원으로 외무위원 활동을 했어요. 재외 동포가 800만명에 이르건만, 관심 가진 전문가 하나 없더군요." 고구려·발해의 영토였던 만주는 접근이 어려워 유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993년 그가 지안(集安) 고구려 고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중국 당국은 한국인의 고분 진입을 불허했어요. 신형식 교수(전 서울시사편찬위원장), 조선일보 취재팀과 모험을 감행했죠. 무덤 중앙 석실(石室)의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촬영한 사진 등을 토대로 1993~94년 전국 대도시를 순회한 '아! 고구려'전은 58만 관객을 모았다. 이어 그는 만주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고 윤동주 기념관을 세웠다.
그는 21세기 유학은 철 지난 학문이 아닌, 전승·발전시켜야 할 우리 문화라고 했다. "중국은 문화혁명 때 공자를 배격하는 '비공(非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맥이 끊어진 의례를 복원하려고 우리 성균관을 찾아오는 형편이잖아요." 이 원장은 내년에 옌볜에 퇴계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일본·대만·미국·독일에도 있는 퇴계학 연구소가 조선족이 사는 만주에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아울러 조선족이 자신의 선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족보도서관'도 만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