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출발' 코스피, 반짝 상승후 다시 박스권에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채권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 이동)' '선진국과 신흥국의 동조화' '가계자금의 증시 유입' '집권 2년차 효과'…. 지난해 이맘때쯤 증권업계는 2014년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대부분 증권사가 코스피가 장기간의 박스권을 뚫고 2300~240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2014년이 종착역에 가까워진 현재, 이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중국·일본·인도 등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가 고루 상승하는 동안 한국 증시는 좁은 박스권에 갇혀 갑갑한 흐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15일에도 코스피는 오전 한때 1900 선이 무너지며 고전한 끝에 전 거래일보다 1.35포인트(0.07%) 하락한 1920.36에 장을 마쳤다.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며 엔저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이번 주 대선을 치르는 그리스에 대한 불안감도 반영됐다.

올해 초 부푼 기대감으로 2000 선 위에서 출발한 코스피가 유독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①악화된 기업 실적

전문가들은 올해 글로벌 경기가 되살아나며 제조업 강국인 한국 기업의 실적도 호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여전히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도 경기 하락세를 이어갔다. 결국 기업들의 실적이 뒷걸음질치면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2.8%, 11.9% 감소했다. 특히 주식시장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부진이 전체 증시에 악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업체에 밀려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 분야의 실적이 급감,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33% 감소한 25조원에 그칠 전망이다. 현대차는 한전부지 고가입찰 논란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가총액이 10조원가량 증발했다. 배당주, 중국 관련주, 중·소형주, 항공주 등 일부 업종과 테마에는 돈이 몰렸지만, 주력산업인 IT·조선·화학·자동차·철강·건설 등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보니 증시도 힘을 쓰지 못했다.

②불안한 수급

올해 증시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시중의 유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펀드 환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저금리 환경을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이 예금 같은 안전 자산을 벗어나 주식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펀드 자금 유출이 지속되면서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에서 2조7000억원이 빠져나갔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가계부채 부담과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채권·배당주펀드·ELS 같은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몰리면서 주식 투자를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분기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이 3조원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시장의 활력이 사라졌고, 증시의 향방이 외국인의 손에 휘둘리는 흐름이 이어졌다. 올해 증시에서 외국인만 7조원 이상을 순매수했을 뿐 기관과 개인은 각각 3조원, 1조60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그 결과 한국 증시는 호재에는 별로 오르지 못하고 악재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을 반복했다.

③반짝하고 사라진 최경환 효과

코스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지난 7월 이후 강한 상승세를 타며 한때 2080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배당 확대와 가계소득 증대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은 증시에 올라탔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사이 중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되고, 가파른 엔저(円低)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기업소득 환류 세제 등 이른바 '3대 패키지 법안'이 이달 초 통과됐지만, 이미 동력을 상실한 뒤여서 증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배당 확대를 체감하면 장기적으로 증시에 긍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이창목 리서치센터장은 "정부의 배당확대 정책에 기업들이 호응하고, 내수 진작을 위한 후속 법안들이 통과될지가 내년 상반기 증시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④발목 잡은 외부 변수

증시의 체질이 허약하다 보니 오를 만하면 터지는 외부 악재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 초에는 아르헨티나·터키 등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으로 코스피 1900 선이 무너졌고, 하반기에는 유럽과 중국의 경기 둔화, 엔화 약세,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 유가 하락 등이 번갈아가면서 증시를 괴롭혔다. 올해 한국 증시를 박스권에 가둔 대내외 요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증시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우증권은 "상장사 이익이 2012년 이후 박스권에 갇혀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 과정에서 신흥국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도 코스피 전망치를 1750~2050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