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嬪(빈) 위한 마지막 구두… 끝내 전하지 못했다

지미 추(JIMMY CHOO)가 나타나기 전까지 명품(名品) 구두의 정의는 이랬다. '100년 넘는 역사를 쌓으면서 가족들이 대대손손 꾸려 온 고급 상품!' 1996년 탄생한 지미 추가 이걸 뒤집었다. '오래되지 않아도 아름답고,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유명인이 즐겨 신으면 명품!' 지미 추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너도나도 신으면서 20년도 안 돼 전 세계 여성들이 열망하는 구두로 성장했다.

'부산 레드닷 디자인 포럼 2014' 참석차 부산을 찾은 디자이너 지미 추(53)를 만났다. 자신이 디자인한 검정 구두를 신고 있었다. 여자 구두처럼 코가 날렵하고 뾰족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디자인엔 관심 없어요.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제 꿈이죠." 지미 추 구두는 한 켤레에 400유로(55만원)를 훌쩍 넘는다. 지난 10월엔 런던 증시에 상장됐다. 하지만 브랜드 지미 추에 디자이너 지미 추는 없다. 2001년 지분을 모조리 팔고 맞춤 구두 장인(匠人)으로 돌아갔다. 시즌마다 구두 수십 종을 한꺼번에 쏟아내야 하는 기성화 작업은 그에게 스트레스만 안겼다.

추의 부모는 말레이시아 페낭의 제화공이었다. 여덟 살 아들이 뒤가 트인 검정 구두를 혼자 힘으로 만들어내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4년 뒤 구두 장인을 길러내는 런던 코드웨이너스 칼리지에 들어갔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런던 뒷골목에 좁고 허름한 공방을 차린 때가 25세 때인 1986년. "아교 냄새 진동하는 곳에서 종일 구두만 만들었어요. 하루에 2~3켤레 만드는 게 고작이었지만 '러키 슈즈'라는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다 팔 때 참 행복했지요."

당시만 해도 굽 높은 하이힐을 런던에서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마놀로 블라닉뿐이었다. 지미 추가 가세했다. 패션 잡지 보그에 소개되면서 대형 세단을 탄 상류층 여성들과 배우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고객은 역시 다이애나 왕세자빈"이다. "1988년 켄싱턴 궁에서 전화가 왔어요. 궁으로 직접 와서 레이디 다이애나의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했죠."

코드웨이너스 시절, 추는 말 없는 학생이었다. 말레이시아 억양이 거세게 묻어나는 영어에 선생은 "말 좀 제대로 하라"며 면박 줬고, 추는 그 후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궁에 갈 때마다 마룻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레이디 다이애나는 내게 '지미, 페낭에선 어떻게 살았어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물어봐 줬지요. 고생한 얘길 하면 귀 기울여 듣다가 눈물을 훔쳤어요."

다이애나는 굽 낮은 펌프스(끈이나 고리가 없고 발등이 깊이 파여 있는 여성용 구두)를 좋아했다.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만든 구두는 모래색 발레리나 플랫 슈즈였다. 하지만 그 구두는 배달 하루 전 그녀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끝내 신을 수 없었다.

이제 추는 고향 말레이시아에 터를 잡고 전 세계를 돌며 교육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전통 작위 다툭(Datuk)을 받았고, 기업이나 단체의 다양한 문화사업을 알리는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키우는 디자이너만 20명이 넘는다. 부산 포럼에 함께 온 가방 디자이너 일라이자 호도 그중 하나다. 추는 호가 만든 핸드백을 들어 보이며 "이들이 자기 이름을 단 디자인을 세계에 내보일 수 있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돈 버는 거 좋아요. 그보다 더 좋은 건 창조하는 거예요. 완성하는 데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해도 그 자체가 아름답고 완벽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그는 "전 세계 어딜 가든 여자들이 왜 날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옷에 잘 맞는 구두 신는 법]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는 "발에 잘 맞아야 하고, 옷과 어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앞코가 뾰족한 구두는 발이 길고 좁아 보이고 ▲T자 스트랩 장식 구두는 발목을 잡아주면서 발등을 드러내 역시 길어 보인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촘촘히 박은 구두는 화려한 연말 모임에서 눈길을 사로잡고 ▲파스텔 톤 옷에 검정 구두는 너무 무거우므로 금빛 스틸레토 힐처럼 베이지나 브라운색 구두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