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18 11:10

친환경농업을 고집하는 젊은 농부, 순창 김병수
이름 : 김병수
나이 : 24
귀농연도 : 2012년
귀농지역 : 순창군 동계면 신촌마을
귀농계기 : 나 자신에 대한 모험 그리고 용기

그 산에 가면 바람소리가 참 살갑게도 들린다. 그 산에만 어울리는 선한 바람이 불면 산 속의 모든 생명체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늘과 바람, 땅 위의 모든 것이 위로가 되는 그 곳에 병수씨의 꿈이 자라나고 있다.


나에게도 꿈이 있을까?

병수씨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남들 하는 것처럼 똑같은 교육과정을 밟고,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대학이라는 곳에만 가길 위한 삶.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살아내는 게 아니었다. 병수씨에게 꿈은 그저 그런 모험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눈에 밟히는 것도 없이 막연하게 스물을 맞았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갔다. 그러나 병수씨는 대학을 왜 가는지에 대한 의문만 앞섰다. 희망도 꿈도 없는 졸업장이 꼭 필요한 걸까. 남들만 따라가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고부터는 무언가 새로운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생겼다.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를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무섭고 어려울 것만 같던 그 곳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마음이 맞는 선후임 중 블루베리를 키우던 젊은 농부가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병수씨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농부의 삶도 괜찮을 듯 싶었다. 이미 병수씨의 부모님은 그가 열일곱살 되던 해, 아버지의 고향인 순창으로 귀농을 한 상태였으니 부모님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전하는 귀농귀촌 이야기] [8] 귀농으로 행복의 기준을 찾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 농부가 된다는 것. 그리고 농촌에서 삶을 이룬다는 것. 도시에서의 생활과 문화가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베인 그에게 농촌에서의 삶은 또 다른 모험이자 꿈이었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우주 같은 세계. 함부로 덤벼들기엔 그 성역이 높을 것만 같던 공간. 농촌은 병수씨에게 그런 존재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전역을 맞게된 병수씨는 우선, 건설현장에 뛰어들어 땀의 가치와 노동의 기술을 익혔다. 건강한 몸 하나로 버틴 건설현장은 그에게 희망 없이 살던 삶을 돌아보게 했고 2012년, 병수씨는 젊다는 패기 하나만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농장이름은 뭐가 좋을까. 그래. 아버지의 고향인 아동실마을의 이름을 따서 ‘아동실농장’이라 짓자.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시크한 도시남, 아동실의 고집 센 농부 되다

아버지의 고향 순창. 그 곳은 이유도 모르게 정이 갔다. 내 가족의 공간이라는, 내 가족을 낳아준 땅이라는 이유에서였을까. 순창은 따뜻한 어머니 품처럼 자신을 꼬옥 품어 안아주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병수씨가 농촌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겼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제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니,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막상 눈앞에 닥친 것보다 아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게 가장 보람된 수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수분야의 땅을 맡겨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보는 아들은 아직은 어리고 가르칠 게 많은 품 안의 자식. 그러나 아들은 꽤 고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관행농에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우선순위로 두었다면 병수씨는 대량생산과 소량판매에 중점을 두었다. 두사람의 농산물은 과정만큼 결과도 달랐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병수씨의 수확물은 아버지에게 그저 놀라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농사철학을 줄줄이 읊어대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조금씩 농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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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요령보다는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두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효율성에 더 중점을 뒀어요. 요즘은 홍보와 판매도 중요하니까요. 또 저는 친환경농법만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친환경농법은 기본적으로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지요. 아직은 젊고 서툰 저에게는 오히려 힘든 농사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환경농법은 제가 시골에 내려올 적부터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화학비료는 굳이 쓸 필요가 없습니다. 녹비작물은 비료와 같은 역할을 하지요. 죽으면서 거름이 되니 저절로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늘 제가 어려운 길을 간다고 걱정하시죠. 하지만 저는 제 선택에 후회 없습니다.”

매년 수확시기가 다가오면 아버지와 병수씨는 입씨름을 하는데 진을 뺀다. 아버지는 제초제를 조금이라도 뿌려야 농산물이 산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고, 병수씨는 화학비료란 비료는 절대로 쓰면 안 된다는 철칙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병수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할 때도 많지만 서운한만큼 오기도 발동한다.

자신의 철학대로 농사를 짓고, 그 곳에서 나온 좋은 작물을 보여드리고 싶은 병수씨는 언젠가 아버지가 자신의 농사철학을 그대로 인정해주실 날을 기다린다. 아버지가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서운함과 속상함을 아는 까닭이다.


아동실 젊은 농부, 또 다른 아동실을 꿈꾸다

병수씨는 만 3천평 정도의 땅에 아로니아와 대봉감, 밤과 매실을 심고 가꾼다. 귀농 첫 해, 병수씨의 연봉은 200만원. 그러나 좌절감에만 빠져있기에는 일렀다. ‘나에게는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다.’라는 자신감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현재 그의 연봉은 첫해보다 10배를 넘었으니 그의 귀농일기도 점점 채워지는 내용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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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는 병수씨보다도 나이가 많다. 너무 크고 오래되었기에 차마 베어낼 수 없어 시작한 매실농사는 병수씨의 효자작물이 되었다.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밤 역시 병수씨에겐 없어서는 안 될 작물이다. 9월 수확 후 매출만 해도 다섯달 동안 천만원이 넘으니 병수씨 입가에 절로 웃음을 띄게 한다. 그러나 병수씨가 진심으로 애착을 갖는 것은 아로니아. 아로니아는 귀농 후 씁쓸한 실패를 맛본 뒤 마음을 못 잡는 병수씨에게 아버지가 격려차 사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맨 처음 30주로 시작한 아로니아는 현재 1000주가 넘을 정도로 큰 수확을 일궈냈고 병수씨는 이로 인해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다.

병수씨는 SNS를 통한 홍보에 적극적이다. 귀농 첫해부터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던 병수씨는 블로그를 통해 지역의 젊은 귀농인들과의 교류를 쌓아갔다. 현재 블로그 이웃만 해도 2천여명이 넘는 그의 인기비결은 부지런한 포스팅 덕분이다. 귀농 이후, 매일매일의 삶을 짧게라도 기록해온 블로그는 그의 귀농과정이 모두 담겨있어 재미와 감동이 함께한다.

마음맞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음이 채워지는 것. 그것은 병수씨가 도시에서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농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치는 않으나 병수씨에게 농부의 삶은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자 삶의 화두이기도 하다.

농촌에서 살아보니 행복의 기준이란 별 것 아니었다. 그저 내가 행복하면 되는 삶. 행복하기 때문에 남다른 길이어도 묵묵히 걷는다면, 그 또한 행복이 되는 삶. 병수씨는 그 답을 찾았으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앞으로 병수씨는 감나무가 가득 있는 산 중턱에 그만의 멋진 집을 지을 계획이다. 바람이 불 때면 바람소리에 쉬어가고, 눈이 올 때면 눈이 내리는 경치에 쉬어가며, 햇빛이 비치면 빛에 이끌려 쉬었다 가는 그만의 힐링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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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이맘 때 쯤이면 그의 농장도 더욱 시끌벅적할 것이다. 병수씨의 친구가 농장일을 함께 꾸려나가기로 해 복작복작한 소담한 일거리가 많아질 듯 하다. 흑염소를 이용한 체험프로그램과 매실나무를 분양하는 주말농장을 함께 운영하며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아동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이다.

가족과 친구라는 든든한 내 편을 품에 안고, 병수씨는 더 넓고 푸른 산을 향해 높이 나아간다. 그 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행복이 가득한 아.동.실. 언젠가 다시 봄이 찾아오면, 매화꽃이 필 때 쯤 하얀 꽃눈이 넘치도록 내린다는 그 곳이 그리울 듯 하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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