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헤지 했다더니… '러·브(러시아·브라질) 펀드' 환차손도 심각

러시아와 브라질 주식에 투자하는 '러·브 펀드' 가입자들이 막대한 투자 손실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수출국이자, 인도·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경제권을 형성하며 금융 위기 이후 투자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나라지만, 최근 유가 급락과 정치적 불안 때문에 주가와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 집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 중인 러시아 펀드의 최근 1개월(18일 기준) 수익률은 -30.5%로, 국내외 주식·채권형 펀드는 물론이고 원유펀드 같은 원자재 펀드까지 통틀어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다. 연초 이후 누적으로 따져본 수익률은 -48.25%로, 금융 위기 때 웬만한 쪽박 펀드 수익률에 맞먹는다.

브라질 펀드도 러시아 펀드의 뒤를 쫓고 있다. 최근 1개월 수익률이 -11.4%, 연초 이후 수익률도 -20.5%를 기록 중이다.

문제는 치명타를 입은 러시아 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신흥국 전문 리서치회사인 이머징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닉 스미티에 수석 투자 전략가는 "러시아가 조만간 회복될 전망이 없다"면서 "(새해에도) 러시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 최악의 투자처 '러·브'

현재 국내 투자자들이 러시아와 브라질 펀드에 투자해놓은 돈은 각각 4825억원과 1669억원어치다. 러시아펀드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JP모간자산운용의 'JP모간러시아증권자투자신탁' 펀드의 경우, 최근 한 달 수익률이 -33%, 연초 이후로는 -52%로 13개 러시아 펀드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지난 10월 기준, 이 펀드는 전체 투자 자산의 63% 이상을 러시아 주식에 투자한 데다, 러시아 2위 석유업체인 루크오일과 최대 가스업체인 가즈프롬 등이 상위 투자 종목에 올라 있는 등 개별 종목 중에는 에너지 관련주 투자 비중이 25%로 가장 많다.

지난여름 월드컵을 앞두고 달아올랐던 브라질 증시도 최근의 유가 급락세에 연고점 대비 24% 하락, 펀드 수익률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신한BNPP봉쥬르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 펀드나 KDB자산운용의 '산은삼바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 펀드 등도 -2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내고 있다. 마켓워치는 올해 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최악의 국가는 러시아와 브라질 등이라며, 새해에도 이런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19일(현지 시각) 분석했다.

◇반쪽짜리 환헤지에 속수무책

러·브 펀드가 손실을 본 것은 주가 하락 때문만은 아니다.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와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급락한 데 따른 환차손 여파도 상당하다. 그런데 환헤지(선물환계약 등을 통해 펀드 매수·매도 시점의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없애는 것)를 한 펀드와 헤지를 하지 않은 펀드의 수익률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게 뜻밖이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총 11종의 러시아펀드 중 환헤지를 하지 않은 상품은 3개로, 환헤지를 한 상품이 훨씬 많았고, 브라질 펀드도 헤지상품 대 미헤지 비율이 7대 5로 헤지 상품이 더 많았지만, 뚜렷한 수익률 격차가 없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운용사들이 원화와 달러화 사이 환 변동에 대해서만 헤지를 했을 뿐, 달러화와 루블화 또는 달러화와 헤알화 사이 환 변동에 대한 헤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해외 펀드가 달러화로 해당 국가 자산을 사들이기 때문에, 달러화와 해당국 환율 변동이 사실 더 중요하다"며 "하지만 원달러 헤지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달러화와 국가별 헤지는 수익성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하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올 들어 9월까지 국내에 판매된 1조3000억원어치의 브라질 채권 대부분도 환헤지가 돼 있지 않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채권 평가액도 낮아지지만, 환헤지 비용이 워낙 높기 때문에 브라질 국채를 매입하는 단계에서 헤알화 환율을 고정하는 게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때문에 해외 주식형 펀드나 채권에 투자할 때는 환 변동에 대한 위험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