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삼성株 5兆 매집… 네이버는 1兆넘게 팔아

5조1955억원. 작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SDS 주식을 순매수하는 데 외국인이 쓴 돈이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순매수 금액인 4조8000억원보다 많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에도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연이어 상장한 것이 호재가 됐다. 반면 외국인은 좋은 실적을 발표한 네이버에서는 등을 돌렸다.

◇삼성그룹주에 몰린 외국인

2014년 코스피지수는 작년보다 4.8% 하락했다. 기관과 개인은 순매도했지만,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4조8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피지수가 0.7% 상승했던 2013년 순매수 금액(4조7240억원)과 비슷하다.

외국인은 삼성그룹주를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상위 10종목 순매수 금액이 12조4510억원이었는데 이 중 41.7%인 5조1955억원이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로 향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상위 10종목 중 삼성그룹주 비중이 각각 12.1%, 9.2%에 불과했다.

삼성그룹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판매 부진 영향으로 '쇼크'에 가까운 실적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연이어 증시에 상장하면서 삼성그룹주에 투자하는 비중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SDS는 작년 11월 주요 글로벌 인덱스 펀드가 참고하는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한국 지수에 조기 편입됐다. MSCI지수를 따라 움직이는 글로벌 자금은 약 40조원으로 추정된다. 제일모직도 오는 6일 편입을 앞두고 있다.

그룹 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그룹이 그동안 지배 구조 정점에서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던 제일모직을 상장시키고, 일부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는 등 사업 구조 재조정에 속도를 내자 외국인들이 지배 구조 개편이 임박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배당주 사랑도 여전했다. 한국전력과 하나금융지주·신한지주·KB금융 등 그동안 배당 성향이 다른 기업보다 높았던 종목을 외국인은 많이 담았다.

◇알리바바·트위터에 뺨 맞은 네이버

2013년까지 외국인 선호주로 분류됐던 네이버는 작년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이 됐다. 1조2031억원을 순매도했다.

실적은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영업이익이 3분기에만 작년보다 88%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중국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것이 네이버 주가에 악재가 됐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펀드는 알리바바와 네이버 모두 인터넷·모바일 업종으로 분류하는데 포트폴리오에 알리바바 주식을 새로 담으면서 업종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네이버 주식을 순매도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9월 이후 순매도 금액이 7000억원에 달했다.

해외 인터넷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네이버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조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기업이 3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영업 비용이 급증하면서 실적에 악재가 됐다"면서 "네이버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은 조선주도 장바구니에서 내놨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을 합해 1조5356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했고 현대중공업은 3분기까지 3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현대차그룹도 외국인에게 외면받았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를 총 3800억원 순매도했다. 엔화 약세로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한국전력 부지에 10조원이 넘는 가격을 써내며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외국인의 투자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작년 12월 상장돼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제일모직도 외국인은 5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차익 실현을 위한 순매도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주·배당주, 올해에도 유망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주와 배당주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 실적이 올해도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면서 배당을 늘려 주주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회사나 지배 구조 개편 과정에서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은 지주회사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