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양미리

생선가게 앞에서 양미리를 찾는다. 동장군 기습에 놀라 생태마저 꽁꽁 얼어 동태가 되어 있다. 그 옆에 반짝이던 비늘이 군데군데 벗겨져 나간 갈치가 멍한 눈으로 눈 내리는 가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생김새로 보아 분명 원양산이다. 포동포동한 녀석의 고향이 세네갈쯤 될 듯 싶다. 이 추위에 따뜻했던 고향이 얼마나 그리울까 싶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있다! 노란 비닐 끈에 형제들이 쪼로록 매달려 나를 쳐다본다.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매끈한 몸매를 한껏 뽐내며 데려가라 눈짓이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그의 남다른 맛을 기억하고 있는 혀가 먼저 반응한다. 누군가는 별맛도 없는데 무에 그리 좋으냐고 할지 모른다. 그건 그야말로 그 녀석의 맛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다. 구워 먹어도 좋고 무를 썰어 넣고 조려 먹어도 좋다. 뼈째 먹어도 좋고 뼈를 발라 먹어도 좋다.

겨울이 제철이라 요즘 나오는 양미리는 알이 든 녀석은 알이 든 대로, 알이 들지 않은 녀석은 녀석대로 그 독특하고 고소한 맛은 직접 먹어 보아야만 알 수가 있다. 보통 암놈의 살이 부드럽고 고소하다고 하는데 난 양미리 중에서도 암놈보다는 수놈을 골라 먹는다. 수놈의 하얀 '곤지'가 입속에 들어가는 순간, 부드러운 크림처럼 입안에 사르르 녹아드는 그 맛을 문자로 어찌 표현할까.

내 기억 속 겨울 풍경 한 자락은 양미리가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면 지천으로 잡히는 양미리를 삽으로 트럭에 퍼 담아 싣고 남대천으로 달려와 모래사장에 부려 놓는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아낙네 수십 명이 달려들어 양미리를 짚으로 이십여 마리씩 엮는다. 엮은 양미리는 남정네들에 의해 덕장에 걸리고 대관령에서 내려 부는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 갔다. 돌아다보니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사실 나는 양미리의 맛이나 덕장 풍경을 예찬하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얘기하고 싶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의 부모님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변변하게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수많은 부모님들이 드럼통에 지펴진 불 하나에 의지하여 맨손으로 얼어가고 있는 양미리를 짚으로 엮어 갔다. 북쪽 대관령에서는 사정없이 몰아치던 바람 앞에서 울타리가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인기몰이 중이라 한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의 피눈물 나는 생존기다.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남보다 좀 더 가르치려고 물불 안 가리고 밑바닥 일하신 분들 이야기다. 그 시대의 부모님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도 그리 살았다. 목숨을 내놓고 월남전(지금의 베트남)에 뛰어들어 빗발치는 총알 속을 달렸다. 달걀을 모래사장 위에 깨트려 놓으면 반숙이 되어 버린다는 뜨거운 사막 속에서도 힘든 줄 몰랐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내 부모가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았다. 본대로 배운 대로 살았다. 몸이 으스러져라 자식을 기르고 내 부모 모시기를 제일로 쳤다. 부모 모시고 산다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지금 시대는 당연시도 아니고 의무도 아닌 선택의 시대다. 자식들이 하고 싶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말이야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한다. 그 말이야 사실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둔 마음이 아니란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혹시나 못 모시겠다고 할까 하여 미리 입막음 하는 것이다.

"부모가 가진 재산이 없으면 굶어 죽고, 부모가 재산을 반쯤 물려주면 쫄려 죽고, 부모가 재산을 미리 안 물려주면 맞아 죽는단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누군가 한 소리다. 침묵이 흘렀다. 한 번 웃자고 한 소린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아무도 우스갯소리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은 어디 있는가! 흔히 하는 말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맞는 것이 성싶다. 자식이 아무리 잘 났어도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는가. 자식이 아무리 잘 났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자식들이 아무리 지위와 명성이 높다 해도, 혼자 태어나고 혼자 컸는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라는 문장은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고 하신 것처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살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는 부모 대로 자식은 자식 대로 자기 자리에서 자신답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