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늘 거울 생활 <선재아트센타>

실내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첫 분위기는 어둠이다. 별빛처럼 희미하게 조명이 내리는 어둠 속의 긴 복도를 걸어가서 마주하는 공간에서 블랙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한 곳의 영상에 눈길이 멈추었다. <아다다(A-DA-DA : 2002년)> 오래전 한국 영화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제목과 맞물리는 것 같지 않은 화면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두 명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한국인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을 맡아 '말더듬이' 같은 영상의 형식이 화면을 움직이고 있었다. 말더듬이가 표현의 과정을 반복하듯이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가 하는 영상의 형식과 개념으로 시간적인 거리 두기에서 감정의 몰입 과정까지 다양성을 지니고 관람객에게 이해를 지연시키고 있다.

전문배우가 아닌 두 명의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하여 동일성의 차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제3의 인물로 등장하는 작가 '나'의 목소리는 영어로 때로는 영어 자막으로 나타나는 한국어로 하여 대사와 자막을 복합적으로 사용함으로 사고와 시선의 영역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이해의 방식을 관객에게 과제로 내밀고 있다.

말더듬이라는 제목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대로 각자가 지니고 있는 개념과 접근 방법의 다양한 형식으로 개인적인 느낌을 시도하고 있음이다.

어둠을 따라가는 눈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영상은 검은 머리를 가슴까지 드리운 여인의 모습이다. 음악 역시 영상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에 감추어진 얼굴에 대한 두근거리는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돌아가는 화면에서 나타나는 모습에서도 얼굴은 보이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만 암시하고 있다.

“마나하타스 댄스(Manahatas Dance : 2009년)”라는 제목은 델라웨어 족 인디언들이 식민 지배를 받기 전 맨해튼의 옛 지명으로 사용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상은 이민자의 도시이자 꿈의 도시로 불려 온 뉴욕을 배경으로, 1911년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공장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화재 사건 등 도심개발 및 재건에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청소년들이 펼치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중첩시킨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우리는 자동차에 연료를 공급하고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하여 태양과 바람과 토양을 이용할 것이다."라는 당선 첫 연설문에서 나타나는 메시지가 시공간에서 가져오는 변화와 희망의 기대감 뒤의 숨겨진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은 어디에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음과 어둠이 함께 공존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는 것처럼 시대적인 발전으로 달려가는 역동의 시간 뒤에 그것들을 향하는 또 다른 어둠이 존재하고 있음을 사진으로 암시하고 있다.

화면의 마지막 부분까지 검은 머리에 감춰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상의 흐름에서 그 얼굴이 지니고 있는 상처의 일정 부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빌려서 시간 속의 상처를 암시적으로 형상화시켰다. 시공간의 흐름이 가져오는 발전에 대한 이상과 잊혀가고 있는 것 사이의 간극으로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차이를 표현하는 영상의 작업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성의 흐름까지도 일치한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또 다른 화면을 만나기 위하여 이동한 어둠 속의 공간은 아예 그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보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 이것 역시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작품 속의 의미로 전달된다. 템퍼 클레이(Temper Clay, '진흙 개기'라는 뜻 : 2012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의 이야기를 한국사적 맥락으로 옮겨온 영상이다.

“어리석고 늙은 눈아. 이 일로 다시 울면 내 너를 뽑은 다음 쏟아지는 눈물을 섞어 흙 반죽을 만들리라”라고 딸에게 내쫓길 때 리어왕이 자신의 선견지명이 부족했음을 탓하면서 소리친 구절에서 내용을 인용하였다.

재산분배로 시작되는 부모와의 갈등, 보모와 별장지기로 일했던 인물들과 처음 만난 젊은 세대의 사람들을 배우나 스텝으로 고용하여 한 달간 함께 생활하면서 작업하였다는 이 작품 속의 공간은 압구정의 주거 공간과 휴가지인 호숫가 별장을 함께 영상 처리를 함으로써 성격이 다른 두 공간이 거울처럼 서로 반영하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마음이 함께 보이는 공간에서 서성인다. 그것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동시대의 또 다른 모습의 갈등으로, 보여지는 것을 향하여 서서히 치유의 시간으로 영상을 바꿔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 전용 전시 공간이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탱크스(The Tanks) 개관전의 첫 번째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어 제작된 것이다.

늘 거울 생활이라는 주제로 세 개의 영상으로 분리하여 비디오,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을 전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재구성하는 김성환의 작품세계이다.

김성환은 1975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로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유학하여 미국 윌리엄스 컬리지에서 수학과 미술을 복수 전공하였다. 이후 MIT에서 시각예술학 석사를 마치고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를 거쳤다.

2007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과 로마 상(Prix de Rome)을 받았고 2010년 <one from in the room>이라는 라디오 작업으로 dogr과 함께 칼 슈카 상을 수상하였다. 2012년 테이트 모던의 탱크스 개관전 외에도 쿤스트할레 바젤(2011), 하우스 데어 쿤스트(2010), 로테르담 현대미술 센터(2008)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즐거움이라는 초등학교의 음악, 미술, 체육을 통합하는 듯한 언어유희를 지닌 작품의 표현 방법으로 타인의 즐거운 감정과 생활 방식까지도 교육으로 통합하려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나타나는 나의 모습처럼 서로 마주 바라보고, 그것들을 반영하여 확장해 가는 거울 이미지로서의 다양성(multiplicity)보다는 끊임없는 분열(split) 속에서 변화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세 점의 영상 작업과 신작 퍼포먼스 <수박의 아들들(Watermelon Sons: 2014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전시 공간은 그 성격과 구성 방식에 따라 1층과 2층의 두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3개월간의 전시 기간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라면 퍼포먼스는 단 두 차례만 한정된 인원에게 공개되는 자리이다.

전시와 함께 하버드 대학교 영미 어문학 교수 스티븐 그린블래트(Stephen Greenblatt), 테이트 모던 퍼포먼스 담당 큐레이터 캐서린 우드(Catherine Wood), 카스코(Casco-Office for Art, Design and Theory) 디렉터 최빛나, 그렉 스미스(Gregg Smith), dogr(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김성환 작가의 드로잉 삽화가 수록된 책 <말 아님 노래(Talk or Sing)>가 영문판과 국문판으로 출간된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아트선재센터는 신작 퍼포먼스를 위하여 이례적으로 2개월간 전시장 운영을 중지하고, 작가가 전시장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구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전시 형식은 작가의 창작 활동에 변형 가능한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건축 구조와 형태를 반복적으로 반영하여 서로를 연상시키는 거울 구조로 되어 출입구가 긴 통로로 이어지고 높낮이가 다른 건축 식 설치 구조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미로 같은 공간이 구축되어 거울의 이미지를 지니고 영상, 사운드, 조명, 드로잉 등의 다양한 공간 구성으로 작가의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어둠의 공간에서 다가오는 미로의 느낌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영상으로 대신하였다. 변화에 따르는 파급의 효과, 변형으로 시도되는 소멸의 이야기와 그 영향력이 지니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깊이로 작가와의 공통의 관심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되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현대예술이 지니고 있는 작품의 세계는 작가의 의도가 느낌으로 전달되는 관객과의 공감대의 형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작가와 상상력의 창조를 향하는 보이지 않는 작업을 시행하고 있는 선재아트센타에서 만나는 특별함과의 만남은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향하는 개인적인 삶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시도하는 가능성은 허락과 동시에 또한 잊어갈 수도 있는 거울 속의 마주 보기 같은 허상의 개념까지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