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운전면허증 혹은 생존면허증

처음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첫번째 갱신을 위해 면허시험장에 갔던 때를 더듬어 보았지만, 이번이 몇 번째 면허 갱신을 하는지 그 숫자 기억이 없다. 다만 무엇인가 바꾸었다는 기쁨 같은 것만 남아있다.​ 이처럼, 운전할 수 있는 면허처럼, 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면허증을 교부할 수 있다면, 이 어찌 하루하루 살아있음이 멋지고 신나지 않겠는가?

생존면허증. 어쩌면, 우리는 매번 서로서로 생존면허증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듯하다. 친구들이 그렇고, 친척들이 그렇고, 직장 혹은 동네 사람들이 서로 그렇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라든지, 우연히 만나 인사를 한다든지, 편지를 주고받는다든지, 혼자일 때 사물에게 느낌을 주고받는다든지 하는 것 등등이 어쩌면 살아있기 위한 힘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면허증 교부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 자격증은 인간온도계와 같아서 접촉 횟수가 적을수록 생존면허증지수는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지면 살아있는 건지, 죽어야 하는 건지, 먹어야 하는 건지, 지금 자야 하는 건지, 그 모두를 깨끗한 종이에 올려 놓고 한 눈에 볼 수 없게 된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존면허증을 쉽게 교부받는 지름길이리라. 그것도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면, 당연히 ‘즐거운표생존면허증’이 더 생기는 거니까.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그 모두 지금 진행되고 있음을 누구나 확인해 줄 수 있다면, 아마, ‘자동연장생존면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나에게 좋게 대해주는 사람만 좋아하고 있는 것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노력하면 운전면허증 받듯이, 생존면허증을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에게 받기 위해 그냥 그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대다수 생존면허증을 소지한 사람들은, 오락가락하는 사람 사랑의 기쁨과 슬픔으로 그 어지러움에 휘청거리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지쳐 쓰러지며 ‘자연’의 베품과 그 아름다움에 매달린다. 지금 느끼고 있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산이거나 바다거나 하늘의 움직임 앞에 그저 숨 한 번 쉬듯 잠깐 아픔에 지나지 않는 거라며 말이다. 그러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며,

땅이거나 구름이거나 들판이거나, 그 한 쪽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성인이라며, 두고두고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 ‘자연’ 속에 사람도 포함시키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따라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또 아닐까. 그 사람을 통해 나도 ‘자연’ 속에 있구나, 라는 ‘평생생존면허증’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운전면허증을 바꾸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버스도 밀리고, 전철도 사람에 사람이 밀리고 있었다. 전철 앞 사람 그림자 피해 신기한 듯 면허증을 들여다 봤다. 아니, 천천히 더 천천히 보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새 운전면허증엔 다음 바꾸어야 시기가 적혀있었다. 숫자를 보고 나니, 전철 안에 겹친 그림자 그 사람 속내처럼, 나도 내 번호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 뿌듯하다. 생존면허증 연장 시기 숫자라도 본 듯하다.

운전면허증을 뒤집고 뒤집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또 든다. 아, 맞아. 여기에 새로이 내가 좋아하는 숫자를 써넣자. 어떤 숫자를 쓸까. 처음 써보는 건데 어떤 숫자가 나에게 어울릴까? 내가 좋아하는 숫자는 1과 0밖에 없는데. 생존면허를 위한 숫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밖에 없는데. 이 세상은 좋은 것과 나쁜 것 밖에 없듯이. 지금도 어떤 숫자가 맞을지 몰라 미루고 있는 생존면허증 번호. 물론 그 번호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었을 거다. 그래도 적어보고 싶은 내 생존면허증 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