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뭉칫돈, 私募(사모)펀드로 갈아타는 중… 상품 직접 만들어 해외투자

작년 말 하나은행의 개인 투자자 20여명은 국내 연기금과 함께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휴스턴 빌딩 인수에 참여했다. 북미 최대 플랜트 엔지니어링 업체인 벡텔이 30년간 장기 임차한 건물로 5년간 연 7~8%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총 투자금액 660억원 중 10% 정도가 개인 투자자들 자금. 이들은 하나은행 PB(프라이빗뱅커)가 판매한 국내 자산운용사의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1인당 투자 금액은 적게는 2억원에서 많게는 20억원까지 다양하다. 한번에 수백억원씩 자금을 집행하는 연기금, 보험사와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부동산을 공동으로 매입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김창수 서압구정 골드클럽 PB센터장은 "시중금리가 2~3%에 불과한 상황에서 연 6~7%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 개인 고객이 늘고 있다"면서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사모형 상품을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아 다른 투자 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수익을 좇던 투자자들이 공모펀드에서 사모펀드로 갈아타고 있다. 덕분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펀드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였지만 최근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사모펀드 설정액 6년간 40% 증가… 전체 펀드 시장 47% 차지

공모펀드 설정액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사모펀드는 최근 6년 동안 배 가까이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의 설정액은 177조6372억원이다. 지난 2008년 말 126조5564억원에서 40.1% 증가했다. 펀드 수도 4828개에서 8549개로 77.1% 늘었다. 같은 기간 공모펀드 수는 4850개에서 3448개로 28.9% 줄었다. 설정액은 232조9308억원에서 204조2654억원으로 12.3% 감소했다.

공모펀드 일색이었던 펀드 시장도 사모펀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체 펀드 설정액에서 사모펀드의 비중은 2008년 말 35.2%였는데 작년 말 46.5%가 됐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사모펀드 비중이 공모펀드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모펀드는 누구나 투자 금액 제한 없이 자유롭게 가입하고 환매할 수 있지만, 사모펀드는 가입 요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투자자 2~49명을 은행이나 증권사가 모집해 판매하는데 상품마다 다르지만 최소 가입 금액이 보통 1억원 정도다.

대신에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 집중 투자해 공모펀드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고액 자산가들이 원하는 투자 대상을 증권사, 은행 PB에게 정해주고 펀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상품을 기획해 판매를 완료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공모펀드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 한 국내 증권사의 자산관리(WM) 담당 임원은 "공모펀드는 대부분 가치주, 배당주 등 편입하는 상품이 비슷비슷하고 수익률도 높지 않지만 사모펀드는 전환사채(CB), 해외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집중 투자해 평균 6~7% 수익을 내고 있어 하루에도 펀드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수차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상품 가입 문턱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소 가입 금액이 억 단위여서 수십억원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1000만~5000만원부터 가입할 수 있는 상품도 출시되고 있다.

◇해외 투자도 사모펀드로… 중국 주식·채권 편입 펀드 인기

이 중에서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점점 커지고 있다. 총 자산의 대부분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설정액은 2008년 말 4670억원에서 작년 말 1조3233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을 편입하는 펀드는 9조원에서 8조5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중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 간 교차 매매를 허용하는 후강퉁(滬港通) 제도가 시행된 작년 11월 전후로 사모펀드 설정을 요청하는 투자자가 많아졌다고 증권사에서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