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그 애완견, 그 사내, 그리고 낙상(落傷)

과욕이었던 걸까? 9일만 지나면 동짓날이라 해가 금세 떨어지는 늦은 오후였다. 구랍(舊臘) 12월 12일에 중랑교에서 한강 영동대교까지 대략 왕복 20km를 달리는 거사를 하기로 작심했다. 20이란 숫자 달성을 해보자는 오기가 동인이었다. 운동장만 빙빙 돌던 게 답답해 굽이치는 중랑천을 쫓아 한강까지 열린 공간을 누벼 보고 싶었다.
 
올림픽대교에서 출발해 중랑교까지는 캄캄한 저녁에 이미 몇 차례 달린 적이 있다. 날이 추워 한강에 사람이 거의 없을 때도 달렸다. 한강 변이 더 정돈되기 전에 뚝섬은 날이 저물 때를 기다렸다 굿 풀이하는 장소도 있었다. 하얀 소복을 한 무속인의 작은 북소리와 결합한 이미지는 그 금방으로 추정되는 곳을 달릴 때도 눈에 선명하게 기억된다. 어둠 속에서 상상은 소름이 돋는다. 뚝섬 근처에 얼마나 사연이 많겠나.
 
하여간 그런 공간을 지나면서도 땀이 솟고, 거친 호흡을 쉬면서 영혼 깊숙한 곳에서 도전 정신과 자신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달리는 거다. 간간이 자전거가 오간다. 단단히 옷을 입은 라이더들이 바퀴에 온 힘을 전달한다. 추울수록 아우토반이 그 소수의 자전거 동호인의 바퀴 앞에 길게 열린 거다.
 
2014년 12월 12일. 내게는 1980년의 그 날과 비슷한 날이다. 내가 한강을 향해 역방향으로 첫 출진을 한 날이다. 시간은 늦은 오후, 일몰 직전까지 출발지로 회착하는 게 목표였다. 콧물도 나기에 호흡이 다소 불편했지만, 마음만은 아니었다.
 
서서히 달리다 몸이 풀린 건 대략 30분 정도 달리기를 하던 때다. 초반에 워낙 천천히 달렸기에 시간이 조금 지체가 되어 막 가속을 하던 때였다. 지난번 역방향으로 달려올 때 용마산보다 높이 뜬 보름달이 중랑천의 잔물결에 렌즈의 비점수차(非點收差, astigmatism)처럼 길게 그리던 곳에 서서 휴대폰에 담던 장소에 거의 이르렀을 때다.
 
거기서 예상치도 못한 중대 국면이 매복하고 있었다. 한 30m 앞에 회색의 큰 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 모습도 안 보였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큰 개가 줄도 없이 다닌 건 못 봤던 거 같다. 유기견이면 어쩌지, 이 개가 적대감을 가지고 나의 주행을 맞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이 왈칵 들었다. 

순간 눈에 오른쪽으로 철제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높은 곳을 풀쩍 잘 넘던 터라 털장갑을 꼈던 말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훌쩍 실었다. 사단이 크게 났다. 뜻밖에 그 상단부는 손길이 만큼 넓었다. 그립을 할 수가 없었다. 몸은 이미 공중으로 떠올랐는데 손이 저 너머로 미끄러졌다.
 
진짜로 그 와중에 두뇌는 옵션을 선택해댄다. 머리로 구를까, 어깨로 떨어질까. 몸은 점점 땅에 가까워진다. 아냐, 손으로 짚자. 그리고는 쿵 하고 떨어졌다. 장갑을 낀 주먹의 약지와 새끼손가락 부위가 집중적으로 땅과 단단히 충돌했다. 시간이 정지했다. 가장 약한 부분으로 땅을 상대한 거다. 그 부분은 핏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었다.
 
철제울타리는 약 1.8m 높이다. 2차로 팔뚝의 근육과 뼈에 충격이 이동하는 것 같았다. 3차 충격점은 팔꿈치다. 이 관절부는 마치 산악자전거의 샥 압쇼버같이 속에서 접히는 것 같았다. 물컹한 젤리 같은 고점도의 액체 감이 팔꿈치 속에서 압축하며 탱탱하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한참 뒤인 12월 24일쯤에 아내 손을 빌려 붕대를 풀고 보니 엄지손가락 반대편 뼈인 척골을 따라 팔꿈치 근처에 두 갈래로 굵은 보랏빛 선이 뚜렷하게 그어졌다. 근육 속을 충격의 쓰나미가 할퀴고 간 자국 같다. 척골의 양단에도 뼈를 꼭 다잡으려고 근육들이 온 힘을 다 썼던 것 같은 보랏빛 흔적이 둥글다.
 
모든 게 멈춘 것 같아진 다음에야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팔이 말을 듣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통증으로 목에서는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목 뒤에 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 녀석이 바로 뒤에 와 있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꼴이 나의 고통을 동정하는 듯했다. 개가 사람과 교감하는 동물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차마 녀석이 그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한참 뒤에 웬 60대 사내가 나타났다. 그가 그 개의 주인이렷다.
 
“추워서 어떻게 해요?”
 
그는 넘어와 나를 부축해줄 생각은 꿈에도 없었을 거다.
 
“추운 거보다 통증이 심하고, 아마도 팔이 부러진 거 같다”
 
사내의 개는 군견만 했다. 유기견인 줄 알았다고 하자 그는 주섬주섬 굵은 흰색 동아줄을 꺼낸다. 이미 때는 지났다. 휴대폰 가진 거 없느냐고 그에게 묻자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없단다.  내 휴대폰은 이미 넘어질 때 유리가 깨졌다. 눈발이 더 굵어졌다. 해가 점점 떨어진다.
 
그는 슬금슬금 개랑 훌쩍 가버린다. 그의 신변을 묻지 않은 건 내 실수다. 개를 가진 주인이고, 그날 그곳의 통행이 드문드문해 요새 세상이 또 험해 어떤 험한 꼴을 우려해 CC-TV 등을 통한 나중을 기약하고 그가 가지 못하게 차마 강제하지 못했다.
 
우선 급한 게 스마트 폰의 깨진 유리조각에 젖은 손가락을 연신 닦아가며 119로 연락을 하고 위치 설명을 했다. 광진 소방서에서 응급차가 그 좁은 자전거 길로 얼마 뒤에 나타났다. 구급대원들이 부목을 팔에 대준다. 양쪽에서 부축해주기에 철제 펜스를 간신히 넘어갔다. 영동대교 근방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도중에 소방교가 그나마 운이 좋은 거란다. 대개 낙상을 하면 머리나 목을 다쳐 살아도 식물인간이 되기에 십상이란다.
 
응급실에 인계되며 내 모습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새로 산 운동화며, 하의며 상의는 흙투성이다. 어찌 된 건지 안도감 속에 수치심이 느껴진다. 상의가 젖어 한기까지 파고들었다. 한참이 지나자 x-ray를 찍자고 한다. 응급실 옆에는 자동차 밑에 깔렸다는 어린 사내애 울음소리도 들린다.
 
방사선 기사가 혼자는 접히지도 않는 뻣뻣한 팔을 틀어 주어 사진에 겨우 찍혔다. 상완골, 척골, 요골의 모습을 같이 석 장을 찍었다. 사진 판독결과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붕대를 감고, 스프린트를 물에 적셔 짜낸 뒤에 오른팔에 맞춰준다. 스프린트가 팔에 후끈해졌다. 바로 굳었고, 끈을 목에 걸자 퇴원을 해도 된다고 한다. 그 다음 주 주치의의 특진을 받았는데 ‘이렇게 부은 팔뚝도 들어가는 옷이 다 있네.’ 하는 소리를 그 대학병원 교수에게 들었다.
 
생전 처음 해본 반쪽 깁스다. 늘 자연스레 붙어 있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던 팔이 불편하자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우선 세수를 한 손으로 해야 했다. 밥도 전혀 써 본 적이 없던 왼손으로 숟가락질부터 젓가락질까지 배워야 했다. 지금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해 당면을 집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통원이 편한 동네 정형외과 의원을 골랐다.
 
손바닥을 위아래로 반전하는 동작은 원활히 잘 되었다. 요골의 회전하는 부분을 맡은 인대에 문제가 없었던 거다. 새끼손가락을 타고 척골에서 팔꿈치 너머 어깨 전 근육까지 타박상이 입혀졌어 요골까지는 영향이 크지 않았던 거 같다. 요골은 엄지손가락과 같은 방향에 있는 팔뚝 뼈로 손바닥이 위아래로 돌아가게 해주는 데 역할을 하는 뼈다.
 
문제는 다친 팔이 숟가락으로 입에 밥을 넣지도 못할 정도로 굽혀지지도 않았다. 또 그 반대 방향으로도 쭈욱 펴지지가 않았다. 12일이 지나도 그 움직임 범주가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30도에서 135도도 안 되었다. 각도기로 재니 당시 내 팔의 움직임 범주는 잘해야 90도 정도 되는 거 같다. 보통 팔의 각도는 ‘기능적 각도’와 ‘운동적 각도’로 단계를 차별하는 것 같다. 나는 거울에 비춰 보니 팔목이 30도 정도 몸통보다 앞으로 굽었다. 
 
원적외선 조사, 초음파, 전기치료를 하면서 팔은 조금씩 더 펴지는 것 같았다. 팔을 무리하게 펴지는 않았다. 지금도 팔을 다 펴는 데 빠르게는 안 된다. 팔꿈치에 용수철이 박힌 듯 아직은 묵직하게 무겁다. 현재로는 거의 정상인 왼쪽 팔에 매우 근접한 각도까지 간 게 다행이다.
 
팔을 굽힐 수 있게 된 것은 25일쯤 지나서야 겨우 되었다. 전날에 전기를 세게 넣어 인대가 있는 팔뚝에 집중했다. 전극을 붙인 근육이 툭툭 하고 저절로 튈 정도였다. 이 치료를 받은 다음 날 팔이 더 굽혀지게 되었다. 같은 날 진료 시 정형외과의가 깍지를 끼고 팔을 펴는 연습을 자주 하라고 해서 그날 밤새 그대로 실행했다.
 
의사가 이제 고비를 넘겼다고 했기에 열심히 했다. 갈수록 좋아질 거라며 깍지를 끼고 손바닥을 몸에서 밀어내는 스트레칭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하여간 물리치료와 의사의 말대로 따라 한 다음날 정말 팔꿈치가 전과 다르게 원활해졌다. 세수를 그동안 두 손으로 못했는데 이날부터 그게 되었다.
 
낙상은 아주 순간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고, 회복도 더디다. 뼈가 부러지지 않고, 흔히 테니스 엘보우로 불리는 인대가 많이 늘어났었음에도 통증이 크지 않았던 것도 운이 좋다. 지난 토요일에 송도에 다녀왔다. 거기서 동서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 개가 무슨 색깔이냐고 내게 묻는다. 회색이라고 대답하고는 곧 군견처럼 크다고 하자 그가 깔깔 웃는다.
 
“개를 무서워하시나 봐요?”
 
“글쎄 트라우마 같은 것은 없는데, 하여간 목 끈도 없고 뒤로 사람도 안 보여 순간 유기견으로 판단했고, 그 자전거 길 주행선이 두 줄 뿐이라 철제 울타리를 넘어 마주치는 것을 잠시 피하려 했을 뿐이야.”
 
개를 두려워하는 것은 약함의 노출일까? 뒤돌아보면 그날 사고는 일단 아내의 말을 안 들었던 탓이 가장 크다. 굳이 눈 오는 날 조깅을 가는 게 탐탁지 않아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나왔다. 둘째로 그 개가 아무리 커도 적대적인지 아닌지는 더 살폈어야 했다. 어찌 보면 서두른 게 화근이 아니었나 싶다.
 
셋째, 피할 곳이 여전히 철제 울타리 너머라고 해도 찬찬히 철제의 모양이나 넘는 방법은 생각을 해봐야 했다. 마음만 급했지 몸이 미처 정보도 없이 뒤따르니 사태가 수습이 안 된 거다. 낙상은 사실 정말 위험한 사고다. 충돌의 순간 팔꿈치를 조금 굽혀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척골과 상완골이 일직선 상으로 충돌했다면 아마도 어느 뼈든 절단이 났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2014년 하반기에 철봉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어깨는 물론 늑골을 지나 골반까지 스트레칭을 상당기간 해왔었다. 또, 하루 많게는 300번의 푸시업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부상을 완화시켰고, 이 정도로 회복하는 데 일조를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응급 이송 시 광진 구급대 소방교의 말이 떠오른다. 그 개 주인에 대해 신상을 물었어야 했다고…. 나는 이 정도에서 끝났지만, 그 자리에 그 개 주인은 어슬렁거리며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 고삐 풀린 그의 집채만 한 개에 눌린 연로한 사람이 만약에 낙상을 나 대신 했거나 후일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들려준다.
 
내가 사는 동네 뒤편에는 산이 하나 있다. 지난여름에 트레킹 길에서 커다란 흰색 개에 이끌려 가는듯한 50대 중반의 거구의 사내를 마주쳤다.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나마 이 정도니 다행이 아닌가? 애완 곰이나 애완 호랑이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사회가 우리 한국 사회가 아닐까 말을 해도 어떤 이들에게는 일리가 있는 과장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