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노년(老年)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제2의 본생(本生)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생(餘生)’ 이란 말을 흔히 써 왔다. 60갑자 인생에서 태어난 해를 다시 맞게 되는 의미의 환갑(環甲) 또는 회갑(回甲)을 맞게 되면, 흔히 할아버지, 할머니 노릇을 하게 되고, 직장이나 생업에서 뒤로 물러 앉아 손주나 돌보던 때, 우리는 그 삶을 여생(餘生)이라 하여, 회갑을 맞은 분에게 ‘여생(餘生)을 편히 지나십시오’ 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10간(干) 12지(支)가 언제 왜 생겨났으며, 왜 하필 12개의 동물 만이 대입되었는지, 왜 60이면 간지 대입이 끝나고 다시 제자리로 환갑하게 되어 일생을 다 살았다 하고, 그 후의 삶을, 남은 삶, 여생(餘生)이라 했을까? 그러나 지(支)에 해당하는 부분을 16개 쯤하고, 세상 동물들을 더 모셔 와, 한 80쯤 됐을 때 환갑할 수 있게 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12간지를 처음 쓰던 시대에는 한 80 쯤 살게 될 줄을 몰랐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본다.

현대 의학에서 무병 무탈하면 120까지 산다고도 하였지만, 영원한 삶의 지침서인 성경에도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80이라(시편 90:10)’ 하였다. 일생을 끊어 보면, 옛 20대 까지는 준비기, 후 60대까지는 활동기, 그 후는 거론된 대로 죽음은 맞이하는, 남아있는 여생기를 살아 왔다 할 수 있다.

현 세대에는 30대 까지가 준비기, 60대까지는 활동기라 하고 그 후를 여생기라 하는 것을 달리 해석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30대 까지 준비기가 늦어진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활동이 계속 이어지는 60대 이후를 여생기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생기도 계속 활동하는 본생기라 하고 싶다. 정리하면 30까지는 학업을 마치고 군에 갔다 오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준비기라 한다면 60까지 30년은 왕성한 활동기(본생기)이고, 그 후도 활동하는 제2의 본생기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길게 잡아 90 수를 한다면, 30-30-30(준비기- 활동기(본생기)-제2의 본생기)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100세 수를 한다면 제2의 본생기는 40년으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오히려 앞의 본생기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한 사회,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기여하는 짐을 지고 가는 길이나, 뒤의 본생기는 그런 짐이 없이 오직 ‘나 만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홀가분하게 내 계획대로 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공허한 소리,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도 준비되지 않으면 오히려 고난의 길이 될 뿐이다. 하나는 자식과 같이, 또한 자식에게 의존하여 살거나 또 하나는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하여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없이 맞이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리라! 그러나, 주변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그것을 소홀히 해왔음을 인정 아니 할 수 없기에, 이 글이, 나의 얼마 안 남은 시간과 젊은 사람들에게나마 남기는 경고문(警告文)이 된다면 족하겠다.

사람들이 제1의 본생기를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과 사투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고 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으나, 제2의 본생기를 위한 준비는 거저 얻어지는 것인 양, 소홀히 하고 있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노년, 넘어지는 나무를 안고 어!어! 하다가 깔려 허덕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 어느 노인의 글은 절절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65세에 큰 영예를 안고 떳떳이 정년하였으나, 어! 하다 보니, 95세가 되어 왕성한 활동기와 똑같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냈음을 깨닫게 되고,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서야 생의 1/3을 헛살았음을 깨닫고 어학 공부를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날, 10년 전 95세 때, 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끝을 맺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노년은 뒷방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하는 시기인가? 주는 밥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 꾸벅이며 햇볕만 쬐이고 있어야 하는가? 교직에서 정년퇴직 후, 대학교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였다. 특히 노인복지에 관심을 갖고 책도 보고 현장 연구도 하였다. 그 후 교회 노인대학,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그들의 안락하고 즐거운 생활을 돕기 위하여 프로그램을 짜 10 여 년 간 봉사활동을 하여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바로 곁에 있었다. 시설이나 가정에서 기초생활 대상자로서 보호 및 도움을 받고 있는 노인들, 노인대학이나 복지관에 갈 수 있는 노인들, 아직 그룹을 지어 등산을 하고 운동을 하는 건강한 노인들은 그런대로 노후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일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소위 ‘동네 노인’ 들이었다. 즉 하루 종일 어린이 놀이터나 공원에 나와 앉아 잡담이나 하고, 기껏 오락을 즐긴다고 텔레비젼 시청이나 화투 정도이니, 이들을 이끌 조직, 지원자, 프로그램 등이 문제임을 알았다. 동사무소에도 겨우 사회복지 담당자 혼자, 우선 급한 일을 맡아, 독거노인이나 수급자 돌보기도 바쁘고, 성한 동네노인들 여가 복지 혜택은 요원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도록 안내하느냐에 있다. 이들을 돌봄보다는 리드가 필요하고, 그 프로그램을 구안하고 실행하는 것이 긴급한 실정이다. 이들의 프로그램 구안에 먼저 힘을 쏟아야겠다. 같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옛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담당부락에 나가 동네 주민들과 같이 마을회관 앞에서, 당시 라디오에서 나오던 ‘국민체조’ 음악에 맞춰 체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대해 부러워하던, 중국인들이 모여 집단 무술하는 장면, 서양 사람들이 모여 댄스를 즐기는 모습 등에서, 우리 나라에서도 집단적인 건전한 춤이나 체조 등이 보급되어 생활화되길 기원해 보기도 한다. 우리 신체의 운동 부위를 고려하여 차례로 만들어진 ‘체조’ 만 잘해도 얼마나 국민 건강에 도움을 줄까? 특히 노인들 신체 조건에 맞는 ‘노인체조’가 구안되어 널리 보급되길 기원해 본다. 각 마을 마을회관 마당에 매일 새벽 체조음악에 맞춰 체조하는 모습이 보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