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빛나던 과거, 시시한 현실서 길 잃은 청춘

경남 충무 고향으로 근태(정우)를 찾아온 여자 친구 자영(한효주)이 물었다. "근태야,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 "나, 평생… 너를 위해 노래할게."

이런. 좀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괜찮다. 청춘이니까. 게다가 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이야기니까. 대한민국의 낭만은 거기 다 모였다 흩어진 듯 호들갑스럽던 시절 아닌가.

'시라노; 연애 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쎄시봉'(2월 5일 개봉)은 기대가 큰 영화다. 정우·한효주 등 젊은 배우들과 김윤석·김희애 둥 중견 연기파들이 통기타 시대 이야기를 다룬다. 윤형주·송창식의 '트윈폴리오' 이전 '쎄시봉 트리오'의 세 번째 멤버 근태, 젊은 가수들의 뮤즈였던 배우 자영 등 허구의 인물들을 실존 인물·장소와 섞어 그려낸 신나는 청춘 악극.

미니스커트·통금 단속과 명동 멋쟁이 여성 등 되살아난 70년대 풍경은 동화처럼 깜찍하다. 윤형주 역 강하늘과 송창식 역 조복래는 실제 인물과 흡사할 뿐 아니라 노래도 놀랄 만큼 잘 부른다. 이장희(진구)와 조영남(김인권)의 감초 연기도 재미를 더한다. 빨간 공중전화에 대고 밤새 여자 친구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사랑 고백을 위해 쎄시봉 명곡들이 태어나는 여러 에피소드도 깜찍하다. 극중 송창식이 '담배가게 아가씨' 멜로디에 맞춰 코믹하게 실연(失戀)을 노래할 때의 재치 있는 편집, 남녀 대학생이 어울려 기타 치며 노래하는 해변 장면에 이르면 "한 번 더 통기타 열풍을 불러오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중반을 넘어 '이수일과 심순애'식 멜로로 빠진다. 대마초 파동 뒤 20년을 건너뛰어 40대가 된 장희(장현성), 근태(김윤석), 자영(김희애)이 미국에서 재회하는 데 이르면 갑자기 신파가 된다. "대마초 단속이란 게 통기타 가수 길들이기였을 뿐 누굴 잡아넣는지는 상관없었던 거야" 같은 역사책 대사를 국어책 읽듯 읊을 땐 한숨이 나온다.

보고 나면 영화 두 편을 한꺼번에 본 듯한 느낌이다. 그게 좋은 의미라고 하긴 힘들다. '그토록 빛나던 청춘'과 '과거에 얽매인 시시한 중년' 사이의 거리는 서울과 LA만큼이나 멀다. 찬란했던 젊음의 빛을 추억하는 것과 후일담 사이 어딘가 적절한 지점에 멈춰섰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