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영화사 미륵전에서

며칠 잠을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마음에서 이루고자 원하던 것들의 멈춤이 지속되고 잠이 들어도 나의 내면의 소리가 꿈으로 가지 못하는 방황으로 하여 잠의 멈춤을 조절하고 있는 것 같은 새벽 시간이다. 프로이드의 꿈의 분석을 대입시키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느낌으로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머리는 잠에서 깨어있고 마음은 꿈길을 헤매는 이상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눈 속에 남겨지는 잔영들이 있다. 햇살 강한 여름날 햇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면 눈 속에 빛의 잔영이 남겨지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꿈속에서 헤매다 남겨지는 잔영이 머리에서 남겨지는 형태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깊은 잠속에서 만나는 정신의 세계와 그 이후 이어지는 마음의 기원이 원하는 형태로 꿈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정신이 들고 눈을 감은 후 다시 그 잔영을 보고자 애를 써도 이미 스쳐 간 잔영은 내 눈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꿈이었던가 아니면 그 잔영이 잠을 깬 이후에 나타나는 정신의 세계였던가 하는 혼미함에 마음이 머물러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꿈속의 영상들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하였고 새벽에 깨어버린 잠이 꿈의 세상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계속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두꺼운 커튼의 틈새로 숲이 깨어나는 느낌으로 한줄기 하얀빛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어둠 속에 걸음을 내밀기 두려워하던 내 마음이 부지런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어둠 속에 길을 걸어가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정신건강상태의 불안정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나이가 가져오는 신체적인 뇌의 불균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처님을 뵈러갈 때 입는 옷을 꺼내고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회색의 헝겊 가방 속에 방석 위에 깔아놓을 하얀 수건과 염주를 챙기고 집을 나선다.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털 부츠까지 신었건만 겨울 새벽의 바람이 거세게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오르는 길이 거의 이 십 여분으로 법당에서 기도하는 시간 한 시간을 헤아리면 겨울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에 택시를 탔다.
 
“절에 가시는군요.”
“예~”
“대단하십니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마음의 상태가 불안할 때만 부처님을 뵈러 갑니다. 평상시에도 열심히 기도하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어서 미륵전의 부처님께로 갑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요. 이 시간에 부처님을 뵈러 가려는 그 마음 하나로도 부처님께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잔돈이 없어서 오천 원을 건네는 내게 백 원을 기꺼이 깎아 주시는 기사님의 택시 뒤 유리창에 붙여놓은 작은 연꽃이 달랑거리며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미륵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차가운 바람이 아침 해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었다. 한 계단씩 오르는 걸음 위로 찬바람이 나를 따라 동행한다.

미륵전 앞에 마련된 제단 위에 촛불을 켜고 미륵전의 부처님께 기도를 시작한다. 108배를 하는 내 마음은 오로지 하나의 기도만을 뇌이기 시작한다. 제단 위에 올린 불꽃이 멈춤 없이 잘 타오르기를 소원하면서 내 간절함이 부처님에게 전달되기를 기원하였다. 108배를 끝내고 금강경을 읽기 시작하는데 손끝이 아려온다. 십여 년 전에 화상으로 피부이식을 한두 개의 발가락은 이미 그 느낌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어떠한 간절함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가를 법당문을 나서면서 마음속의 또 다른 나에게 되물어본다. 잠결에 찾아온 어떤 형상으로 인한 간절함이 부처님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욕심도 어떠한 이기심도 버리게 된다. 무심의 평온함으로 이어지는 기도의 상태이어야지만 그 기도가 마음으로 닿아지게 된다는 큰 스님의 법문을 알게 되던 이십여 년 전의 어느 날부터 기도하는 마음은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도하는 그 순간만은 욕심을 버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언젠가 느꼈던 그 아득하던 감정의 기억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기도가 일주일을 지속시켰다. 법당 앞에 준비된 제단에 촛불을 켜는 그 순간부터 무심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노력을 하지만 기도 중간중간 고개를 내미는 자아가 나를 괴롭힌다. 손가락은 아려오고 덧신을 신은 발가락도 시려온다. 일어나서 다시 108배를 하고 무릎을 꿇고 마음의 상태를 집중시킨다.
 
지난해 여름 봉정암으로 기도를 올라가던 날의 그 더위를 생각한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날의 뜨거움이었으나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시간이 흐르면 버리고 다시 피워내는 새잎 같은 신선함이었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마음에 품어본다. 아무리 얇게 저며내어도 물체는 앞면과 뒷면으로 양면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운 여름날에 생각하던 바람과 그리고 겨울에 기억하는 여름날의 잔상이 비교되고 있었다.
 
내 모든 마음을 다 풀어 내리고 돌아서는 법당 앞에서 타오르는 촛불의 기운이 나의 기도와 함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절집마당 곳곳에 남아있는 하얀 눈의 흔적을 조심스레 밟는다. 대법당에서 울려오는 스님의 경 읽는 소리가 절집의 지붕 위를 그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절집 안의 어느 곳이나 자연과 함께하고 있는 고요한 모습들을 새삼스레 바라보면서 우주가 풀어내는 자연의 이치를 신기하게 깨달아간다.
 
아침잠 많은 내가 새벽잠을 떨치고 절집으로 향하고 있는 마음까지도 자연의 순환에서 떼어버리지 못하는 인연의 고리가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풀어낸 기도가 원하는 지점까지 닿아지기를 바라면서 얼었던 손과 발의 감각을 되돌리기 위하여 천천히 집으로 걸어오는 시간에 잊고 있었던 일지암이 생각났다.
 
이년 전 전남 대흥사를 찾았을 때 대흥사 뒤편 산언덕에 자리하고 있던 일지암의 맑은 바람에 이끌려 일주일 후 다시 그곳을 찾았고 밤새워 삼천 배를 하고 ‘부처님 뜻대로 하소서!’라는 홀가분한 마음을 느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참으로 힘들었던 몇 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준비 없이 시작하였던 일의 매듭이 꼬일 대로 꼬여서 그 겨울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 부처님께 매달리는 마음으로 일지암을 찾아가 원하는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부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하였다.
 
삼천 배를 마치고 법당문을 내려서는 내 발밑에 겨울 산언덕의 찬바람 아래로 푸른 달빛이 휘영청 내리고 있었다. 하얗고 조그만 돌들을 깔아놓은 법당마당은 달빛의 푸른 기운이 출렁이고 있었다. 일지암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의 어두운 능선을 바라보면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힘의 정기를 마음 가득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어떤 일의 결과보다 내 마음이 평온하고자 시도하였던 기도의 힘은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을 가져왔고, 그 시점에 태어난 둘째 외손녀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기와 함께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아기와 함께 잠을 자기 시작한 이 십 여일 후 원하던 일의 매듭이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이 평온해지자 풀어가야 하는 매듭의 고리가 자연의 순리처럼 순순히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일의 진리가 내 마음 안에 있음을 그때 배웠다.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을 바라볼 때 원하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진성측달의 현상이다. 모든 기의 원리는 이(理)로서 시작되지만 그 사물들을 하나하나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살펴볼 때 그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는 오래전 동양의 철학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내면의 세상이 우리의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작은 발견 하나가 새벽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반짝거리며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어떤 이기심도 아니었고 치밀한 계산으로의 행동은 더욱더 아니었다. 신에게서 시작된 운명의 연결고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어지는 끊어버리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삶의 가닥이라고 누군가가 정의하였다. 기도하는 내 마음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원하는 곳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오롯이 내게로 전달되어서 나의 마음에 평온으로 깃들기 시작하였다.
 
아주 작은 행동의 의미 하나가 또 다른 존재감으로 내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씩 배워가는 삶의 진리이다. 세상의 어떤 일에도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새벽잠을 떨치고 부처님을 찾았던 그 이면에는 내가 깨우치고 배워가야 하는 수많은 삶의 지평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리랑을 아리랑으로 슬픔의 원형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그 슬픔의 세상을 노랫가락으로 풀어내어 승화시켜가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지니고 있는 신명처럼 겨울 바람결에 간절함으로 소망하나를 풀어내고 싶었던 내 기원의 시간이었다. 그 기도를 통하여 나는 또 다른 생각의 키를 키우고 있음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