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쓰죽회'를 아시나요?

세상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다. 그중에서 이름이 특이한 모임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쓰죽회’다. 나이가 꽤 든 어른들이 회원이다. ‘가진 재산을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하여 다 쓰고 죽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여생을 보내는 데 쓰고 가겠다고 한다. 자식들은 분명 찬반 의견으로 나뉘지 싶지만, 새로운 노후설계로 보인다.

요즘 영화 가에서 화제는 단연 ‘국제시장’이다. 6·25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시니어 세대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며 가슴 속에 울어나는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를 통하여 시니어 세대의 헌신을 되새겨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후세들이 아픈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지 싶어 다행스럽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가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였다. 오로지 가족이 전부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희생했다. 덕분으로 오늘의 우리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수만 리 외국의 탄광에서, 병원에서 시체를 닦으며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난의 생활을 참았다. 월남전쟁의 포성 속에서도 목숨을 건 투혼을 불살랐다. 태양이 살을 익힐 정도의 중동의 열사의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했다.

그러한 현실의 삶에서 자신을 위한 미래의 준비는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을 성실하게 살면 되었다. 오직 자식이 잘되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자식농사라 했다. 농사를 짓기 위하여 기르던 소(牛)를 팔아서라도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상아탑을 우골탑으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정년을 마친 많은 아버지가 금싸라기 같은 퇴직금을 자식 사업자금으로 대어 준 후 사업이 잘되지 않아 노후자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부모 세대가 한둘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대로 불효의 마음이 자리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때로는 자식에 짐을 지어주고 싶지 않아 노부부가 목숨을 끊는 아픈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자식을 위해서 다 쓴 결과다. 부모의 마음으로 볼 때 자식들의 고통을 그냥 지켜볼 수 없는 자식 사랑을 이해하게 되지만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자기의 인생임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스위스에 80년대 초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친구로 사귀었던 스위스 젊은 부부가 들려준 얘기가 신선하게 들렸다. 자녀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도와준다고 했다. 그 후는 스스로 독립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청소년기부터 자립심을 키운다. 미국의 경우도 20세 이상이면 독립시킨다 한다. 유대인은 12살에 성인식을 가진다.

우리는 자식 내리사랑으로 지금은 평생을 걱정하여야 한다. 손주도 할아버지가 돌보아야 하는 세태에 이르렀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조건이 ‘어머니의 치맛바람’,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우스개도 생겼다. 자식 세대에서 손주 세대까지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오로지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의 학구열에서 출발하였지 않을까?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매달렸다. 인성이나 자녀가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고려하지 않았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판단력도 키워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일러 주지 않았다.

경제관념도 밥상머리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에만 골몰하였다.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손주까지 돌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쓰고 죽겠다는 모임이 생겨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본 모습으로 돌아온 현상일 뿐이다.

자기가 모은 재산을 다 쓰고 죽겠다는 취지가 나쁘지 않다. 자신을 위해 의미 있고 보람된 일에 쓰고 가려는 생각에 동감을 느낀다. 돈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얻어진 모든 경험과 지혜와 역량을 사회를 위하여 다 쓰고 가는 ‘쓰죽회’가 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