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처음과 끝에 자리한 이들, 가족!

핵가족화가 진행된 것은 이미 고릿적 일이고, 이제는 1인 가구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그들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한 만큼 개인의 기호와 사적 공간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또 다른 흐름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도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일명 ‘무언가족’이다. 이쯤 되면 가족보다는 주거공간을 나눠 사용하는 동거인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런 모습이 요즘의 세태라 할지라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근원을 고민할 때, 눈을 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오늘날 가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여기 미국 뉴욕에 사는 소녀가 아버지의 고향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첫 장을 열면 돌고래가 뛰노는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하얀 자갈이 깔린 바닷가에는 종유석이 주렁주렁 달린 동굴이 있고, 엉겅퀴와 백리향이 자라는 절벽에는 염소들이 모여 산다. 척박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섬의 중심에 아버지가 태어난 작은 마을, 오라니가 있다.

도시에 살던 아이에게 아버지의 고향 마을은 낯설지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을 그대로 간직한 오라니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삶을 오롯이 만나고 느낀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낮은 돌담,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 속에 아버지의 지난날이 담겨 있고, 그 풍경이 여전히 그곳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모두가 가족이고 친척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누구에게나 과자와 초콜릿을 건네고, 배가 고프면 어느 집 부엌에 들어가 허물없이 밥을 먹는다. 이웃 아이의 탄생도, 이름 모를 노인의 장례식도, 며칠 동안 이어지는 결혼식 잔치도 나의 일이고 모두의 일인 것이다. 아이는 이 조각조각의 경험을 통해 석수장이였던 아버지가 왜 평생 고향땅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가족 공동체처럼 완전한 이곳에서 ‘인생에서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이전 세대는 오라니 같은 시공간을 살았을 테지만 단절된 삶을 사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판타지 속 세상처럼 낯설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살갑고 따듯한 그 시공간의 교감과 소통은 참으로 부럽다. 2014년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황선미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내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보다 부족한 게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데도 우리는 자주 고독해진다. 한집에 있어도 각자의 섬에 버려진 듯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도 한번쯤 찾아가볼 고향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2012년 볼로냐 라가치상 멘션 수상작인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이마주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의 첫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