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12 04:00

귀성길 짬 내서 보러 간다, 괴산 '연리지'

충북 괴산 선유동계곡 입구에 있는 연리지는 백년해로를 한 부부처럼 한날한시에 함께 하늘로 갔다. 보호수 표석에는 ‘소나무 한 그루’라 적혀 있다.
충북 괴산 선유동계곡 입구에 있는 연리지는 백년해로를 한 부부처럼 한날한시에 함께 하늘로 갔다. 보호수 표석에는 ‘소나무 한 그루’라 적혀 있다.
이 엄동설한에 무슨 얼어 죽을 일 있다고 여행은 무슨 여행인가. 그런데 일단 떠나보면 눈 즐겁고 마음 산뜻한 게 또 겨울 여행이다. 평생 함께 사는 나무들이 있으니 이를 연리지(連理枝)라 한다. 바삭바삭 말라붙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충북 괴산 선유동 계곡 초입에 있으니 귀성 길 짬을 내 만나보기 딱 좋다.

선유동 연리지(仙遊洞 連理枝)

선녀들이 놀았다고 해서 선유동(仙遊洞)이다. 1시간 거리에 있는 화양동 계곡과 달리 아담하고 여성적인 계곡이다. 꽁꽁 언 계곡수 아래로 물소리가 예쁘다.

선유동 입구에는 100년 묵은 소나무 숲이 있다. 숲 앞쪽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허리춤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다. 날 때 둘이었으나 서로 하나가 되어 살게 된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 한다.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두 나무 줄기에 상처가 나고, 서로 붙은 채 상처가 아물면 내부 조직이 붙어서 한 그루처럼 성장하는 나무다.

선유동 계곡이 있는 송면 연리지는 20세기 말에 존재가 알려졌다가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표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수종 및 본수: 소나무 1본'. 두 그루가 아니라 한 그루라는 말이다. 두 나무는 손을 꼭 붙잡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두 손을 꼭 잡았다가 샴 쌍둥이처럼 하나가 돼 버린 격이다. 연리지라는 이름을 가진 소설, 영화도 셀 수 없고 중국에는 양귀비와 현종을 연리지에 빗댄 시도 있었다.

그런데 연리지는, 한 그루가 죽으면 나머지도 죽는다. 2008년 초 한 그루가 솔잎을 떨어뜨리고 껍질도 갈라지더니 그해 8월에 죽어버렸다. 몇 달 뒤 다른 나무도 죽었다. 막걸리를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보호수 지정도 해제됐다. 그들이 승천하던 해에 보았던 풍경과 올해 며칠 전 보았던 풍경은 변함이 없다. 사람이 저들처럼 변함없이 사랑하고 동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마음은 대체로 바람 같아서, 그리 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고 저들을 부러워하며 연리지를 찾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연리지펜션(043-833-0222)'을 검색하면 된다.

낙영산 정상 부근에 있는 소나무.
낙영산 정상 부근에 있는 소나무.
◇삼송리(三松里) 왕소나무

연리지에서 10분 정도 차를 몰면 삼송리 왕소나무 후손들을 볼 수 있다. 2012년 여름, 태풍 볼라벤에 600년 노거수 용송(龍松)이 쓰러지자 주민들은 용송을 호위하던 소나무들을 공식 후손으로 추대했다. 올 3월 주민들은 이들을 대를 이어 천연기념물로 신청할 계획이라 한다. 나무 생김이 몸을 비비 꼬고 승천하는 용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송이다. 내비게이션은 '옥량폭포'를 검색하면 된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아니, 작정을 하고 겨울을 즐기려고 떠났다? 그렇다면 낙영산으로 간다.

◇낙영산과 공림사

어느 날 아침 세숫물 받아놓고 얼굴 씻을 준비를 하던 당나라 황제 고조(高祖) 대야 위로 천하일미(天下一美)의 산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당장 화가를 불러 자기가 본 산을 그리게 한 후 중국을 샅샅이 뒤지게 하명했으나, 그 누구도 산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신라까지 사신을 파견해 뒤지니 괴산 땅에 그 산이 있지 않은가. 하여 그림자를 떨군 산이라 해서 낙영산(落影山)이다. 산 초입에는 공림사라는 절이 있다.

서기 873년 신라 경문왕 때 창건된 절이다. 법주사보다 융성했지만 임진왜란 때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고 다 탔다가 중건됐다. 6·25 때는 인민군에 의해 점령됐다가 국군의 작전으로 전소됐다. 1965년 재중건이 시작돼 1981년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등산로는 절 왼편 오솔길에서 시작한다.

충북 괴산 개념도

발 디딜 곳 찾으려 하면 거기에 오목한 바위가 앉아 있고, 가파르다 싶으면 늙은 나무뿌리들이 칡넝쿨처럼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30분쯤 지나 눈앞에 쇠난간이 보이더니 하늘에 도착한다. 정상을 눈앞에 둔 능선에 닿았다. 5분 정도만 가면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그 바위에 오르면 아래로 공림사가 내려다보인다. 옆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소나무가 몸을 비틀고서 바위에 기대어 있다. 소나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다. 그런데 이 바람 거센 능선에서 이 소나무는 키는 낮고 온몸을 바위에 기대고 비틀어져 있다. 살아온 내력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다. 해발 700m도 되지 않는 작은 봉우리에 이런 신산한 삶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공림사에서 출발해 공림사로 돌아오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너른 암반 지대에 앉아 뙤약볕도 쬐고 360도로 보이는 산줄기도 감상해본다. 속리산 못지않은 아름다운 바위들을 목격할 수 있다.

공림사 사하촌에는 토속음식점이 여럿 있으니, 조심조심 하산해서 절에서 1000년 넘게 산 느티나무 나목(裸木)을 접견하고 텅 빈 배도 채우도록 한다. 공림사 www.gongrimsa.or.kr, (043)833-1029,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45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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