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현대적 멋 가미해 젊은층 잡아야죠

"선생님들, 지금부터 옻나무 수액과 찹쌀풀을 반반씩 섞어 나무 표면에 삼베를 붙일 거예요. 잘 보세요."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남부기술교육원 실습실. 임충휴(66) 칠기(漆器) 명장의 손길을 따라 제자들의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인다. 조개껍데기 장식을 붙이기 전에 나무가 뒤틀리는 것을 막는 작업이다. 실습실 곳곳에 전시된 보석함, 화병, 소반 등에 새겨진 자개의 영롱한 빛깔이 실내에 진동하는 옻칠 냄새를 잊게 할 만큼 눈부시다.

열다섯 살 때부터 나전칠기를 손에서 놓은 적 없는 임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후진 양성을 위한 기술 전수에 본격 나섰다. 반세기 넘게 업(業)으로 삼아온 전통 공예 나전칠기의 맥이 끊기는 것을 지켜만 보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2011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나전칠기 종목이 사라졌다. 전국대회를 열려면 최소 7개 시도에서 각 7명씩은 출전해야 하는데 더 이상 나올 사람이 없었다. 나전칠기를 정식으로 가르쳐온 배재대 칠예과마저 2012년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전국에 200명 남짓 나전칠기 기능인은 남아 있지만 90% 이상이 환갑을 넘겼다.

강의 내내 임충휴는 제자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다 대학 졸업하고, 저보다 똑똑한 분들이에요. 저를 '선생님'으로 대접해주니 과분하죠."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그는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상경해 신문을 배달하고 구두도 닦았다. 그러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겠다는 제안에 열다섯 살 때 경남 통영의 나전칠기 공방으로 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간 한 푼 못 받고 궂은일만 하며 어깨너머로 배웠다. 임충휴는 전통을 잇기 위해 찾아온 제자들이 그저 고맙다고 했다. "저는 좋아서가 아니라, 먹고살려고 배웠어요. 관심 있고 좋아서 배우겠다는 분들을 보니 신기하고 감사하죠."

IMF 외환 위기 이후 경기 침체 탓인지 나전칠기 수요는 급격하게 줄었다. 서울·경기에 공장 3개를 운영하며 70~80명 직원을 두었던 그는 12억원 빚더미에 앉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 전통을 어떻게든 후대에 전하자는 동료들의 응원 덕이었다. 한국현대미술대전(대상)과 같은 큰 대회에서 20번 넘게 입상한 임충휴는 2004년 명장에 선정됐다. 이후 미국·프랑스·독일 등 해외에서 전시하고, 전국을 돌며 강연하고, 배우려는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주고 있다.

끊겨가는 맥을 이으려는 명장의 고민은 깊다. 그는 얼마 전 광명시에 있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 매장을 찾았다. 단순한 디자인과 싼 가격을 무기로 한국 시장에 뛰어든 이케아에 맞서 우리 전통을 지킬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친환경적이고 견고한 나전칠기에 비하면 이케아 가구는 조악(粗惡)했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몰려온 손님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전칠기도 화려함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케아처럼 단순한 멋도 시도하고 가격도 낮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많이 찾아야 우리도 신나게 일할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