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날카로운 유머, 날아오른 연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후보작 발표 때부터 이 영화로 떠들썩했다. 알레한드로 이냐리투가 연출하고 마이클 키튼이 주연한 '버드맨'이다. 이미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선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30년 전 블록버스터 '버드맨'의 주연 배우였던 리건(마이클 키튼)은 속편 출연을 거절한 뒤 추락을 거듭해온 퇴물 배우다. 그는 남은 재산을 털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뉴욕 연극 무대에 올리려고 한다. 뜻밖의 사고가 이어지고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다. 자의식 과잉의 조연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까지 끼어들며 무대는 난장판이 된다. 설상가상 옛 영화 속 버드맨이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온다.

'21그램', '바벨' 등에서 이냐리투 감독은 우연한 사건의 연쇄반응 속에 혼돈에 빠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재주를 보였다. 이번에 그는 진지한 영화에 블랙 코미디를 초콜릿처럼 듬뿍 발랐다.

마이클 키튼이 왕년의 버드맨을 연기하는 건 영화 '배트맨' 1호 배우였던 스스로를 인용하는 자학 개그다. "맙소사. 제러미 레너한테도 망토를 입혔어?"라며 할리우드를 조롱하고 선정적 자극에 목매는 관객도 비아냥댄다. 그런 그에게 딸(에마 스톤)은 진저리친다. "아빠도 이 연극도 하나도 안 중요해. 어차피 60대 백인 부자들이 정장 입고 시간 때우러 오는 연극이잖아. 아빤 블로그 싫어하고 트위터 무시하고 페이스북도 없어. 그건 그냥 존재가 없는 거야!" 이냐리투 감독은 치밀하게 계산된 롱테이크를 베틀 삼아 신산한 유머와 수다스러운 대사로 태피스트리를 짠다. 광각 카메라는 연극 무대 안팎을 이동하며 '원 샷―원 시퀀스'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비티'로 오스카를 거머쥔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츠키의 솜씨다. 실은 이 현란한 유머와 촬영기법 한꺼풀 아래엔 사랑받으려 몸부림치는 존재의 가벼움, 위기에 처한 가냘픈 실존에 대한 연민이 숨겨져 있다. 극중 리건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빌려 말한다.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고 싶었다"고. "난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느냐"고.

영화 제목이 알파벳 순서로 하나씩 나타나는 오프닝, 배우의 전작 이미지를 새 캐릭터에 혼입하는 방식 등은 장 뤽 고다르에게 바치는 이냐리투의 헌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물감 없이 한데 녹여 주조한 뒤 스릴러의 재미까지 입혀 영리하게 세공한다. 경이로운 119분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