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팔아야 사죠"… 金·탄소배출권 시장 개점휴업

첫날 거래 대금이 974만원. 그 뒤 사흘간 10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 거래됐고 이후로는 속된 말로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다. 미국보다 앞서 전면 도입한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이 문을 열었지만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딱 나흘간 거래가 이뤄진 뒤 찾는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예산은 계속 투입되고 있는데 거래가 언제쯤 재개될지 알 수 없어 유관 기관과 정부도 한숨만 내쉬고 있다. 주식 이외의 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금 시장은 거래량이 조금씩 늘고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거래 규모는 애초 예상했던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예상대로' 거래 끊긴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지난달 12일 문을 연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은 개장 이전부터 말이 많았다. 산업계에서는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들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정부를 상대로 이의신청을 하고 집단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면 기업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시행된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할당한 것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면 거래소에서 다른 기관으로부터 부족분을 사야 한다. 사지 못하면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데, 시장가격의 3배에 해당한다.

개장일인 1월 12일에는 다섯 번에 걸쳐 총 1190t이 거래됐다. 거래 금액은 974만원으로 지금껏 최고 기록이다. 13·14·16일 사흘간 평균 63t이 거래된 이후로는 한 건도 거래가 발생하지 않았다. 매수 주문을 낸 곳은 있지만 팔겠다는 기관이 없어 거래가 안 되고 있는 것.

가장 큰 문제는 거래를 해야 하는 산업계에서 제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적용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500여 개다. 정부가 올해부터 2017년까지 할당한 온실가스 배출권은 총 15억9800만t인데 신청한 규모에 비해 20% 정도 적다. 배출권을 팔 만큼 할당량이 남아도는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가 힘든 것. 이런 지적은 시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제기됐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유럽과 중국 시장도 제도 시행 초기에는 거래량이 많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할당량 준수 여부를 기업에서 보고받는 기간인 내년부터 거래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 거래량 두 배로 뛰었지만… 유통업자 참여 부진

지난해 3월에 문을 연 금 시장에서는 개인들이 증권사를 통해 순도 99.99%의 금 현물을 사고팔 수 있다. 개장 초기 일평균 거래 대금이 1억6000만~1억8000만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1월부터는 3억원을 넘었다. 거래량도 일평균 4㎏에서 8~9㎏ 정도로 뛰었다. 개장 초기보다 거래량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정부에서 예상했던 수준에는 못 미친다. 정부와 거래소는 장외시장에서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물량이 금 시장을 통해 대부분 양성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에서 추정한 연간 음성 거래량은 55~70t 정도인데 최근 거래량이 늘어났다고 해도 갈 길이 멀다.

시장에 금 현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공급자의 참여 부진이 가장 큰 숙제로 꼽힌다. 현재 국내 금 시장에서 매수·매도 주문을 내는 사람은 대부분 개인 투자자이다. 해외 금 시장은 금 유통업자들이 시장을 주도해 가격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최근 정부가 수입하는 골드바에 부과하던 농어촌특별세를 면제하기로 해 공급자의 참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이 세금이 골드바 거래 가격을 장외시장보다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다만 장외에서 거래할 때와 달리 부가가치세 환급을 즉시 받을 수 없는 점 등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