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고향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앞에 서 있다. 저만치 마주보이는 저 막다른 곳을 돌아서면 다시 골목이 하나 나온다. 그 골목길 중간쯤에 우리 집이 있다. 가긴 가 보아야겠는데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언젠가처럼 옛집으로 가는 골목길엔 잡풀이 무성할 것이다. 빈 소주병과 깨진 소주병이 서너 개 구르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것처럼 사람들의 발자국을 잃어버린 골목길. 더 이상 길이 아닌 길로 남아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간다. 바람 한줄기 골목길에 일렁인다. 메말라 뼈만 남은 강아지풀들이 미연이네 대문 앞에서 아는 체한다. 낯 설다. 기억에 없는 강아지풀들도 내가 기억에 없으리라. 다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라 그저 반가운 모양이다.
골목도 사람처럼 늙나보다. 아무도 찾는 이 없으니 시름거리다 급기야 누워 버린다. 시멘트 담벼락마다 검버섯이 피어나고 말라 버렸다. 칠이 벗겨진 숙이네 대문에 찬바람이 들었는지 삐걱거린다. 관절통이다. 그 흔한 개발바람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버려진 골목길엔 적막함만 가득하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고맙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골목길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일터로 나가던 어른들이 있었고, 양지바른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소꿉놀이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소소한 먹을거리가 생겨도 앞뒷집 서로 나누어 먹던 어머니들을 발걸음이 부산했다. 대문은 늘 열려 있었고 개들이 짓는 소리나 닭울음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화려하진 않아도 되바라지지도 않은 샛길이었다.
골목길은 숨바꼭질의 달인이었다. 한두 번 온 사람들이 이 작은 막다른 골목 앞에서 난감해하기 일쑤였다. 찾을 집은 찾지도 못했는데 길이 막다른 골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에서 들어서는 골목 어귀야 그래도 컸지만 그 골목 어귀를 들어서는 순간 골목길은 이리저리 갈라져 갔다. 여기다 싶은데 보면 아니고, 저기다 싶은데 보면 엉뚱한 곳이었다. 순간순간 숨어버리는 골목길을 몇 번이고 돌고 돌아야 겨우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보여 주었다. 숨바꼭질을 좋아했다는 것은 어쩌면 숨기고 싶은 것이 유독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남루한 살림살이나 뒷집 할아버지가 늘 달고 살던 기침소리, 헐벗은 아이들 이런 것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골목은 그리움이다. 낮은 처마 밑을 지지대로 삼아 반쯤은 썩어가는 낡은 각목 위에 매달려있던 가로등 아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머문다. 삼십 촉 흐린 불빛 아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깊은 겨울밤, 한잔 술에 거나해진 아버지가 갈지자 발걸음에 맞추어 부르시던 노랫가락도 머문다. 평소에는 노래 한 자락 부르지 않던 그 근엄한 아버지가 술 한 잔에 녹아들어 유독 이 가로등 밑에 오시면 노래가 흘러나왔다.
골목길은 가난했다. 그 세월에는 가난해도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고 산 시절이다. 아침저녁이면 집집이 굴뚝에서 연기가 피워 올랐고 밥 냄새, 찌개 냄새가 골목길로 흘러넘쳤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어른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흘러넘쳤다. 호박전 한 개도 혼자 먹는 법이 없었다. 콩 반쪽도 서로 나누어 먹던 시절. 가난했어도 가난하지 않았다.
골목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다 허물어져 가는 시멘트 불록 담 위를 익숙하게 뛰어오르며 힐끔거린다. 웬 낯선 이방인이냐는 듯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가 그 골목길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낀다. 그게 고양이이면 어떠랴. 아직은 숨이 멎지 않은 골목길에 감사함을 느끼며 돌아선다.
이 골목길을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골목길에 서서 새벽녘 부새우 사라고 외치던 아낙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가 있을까. 한낮 나른한 정적을 깨트리던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며, 저녁 골목길을 누비며 두부 사라고 외치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