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아무도 안 다쳤지만… 누구도 무사하지 못했다

피해야 할 부부싸움 중 으뜸은 휴가지 싸움이다. 단란한 휴식은 망가지고 풍광도 와장창 무너진다. 놀러 와서 웬 봉변인가. 부부라는 이름의 야자수가 베어져 바닥으로 쿵 쓰러지는 충격이랄까. 도망치고 싶어도 숨을 곳이 없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포스 마쥬어(Force Majeure)'는 그 막막한 관계의 사태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했다. 까다로운 제목은 '불가항력'이라는 뜻. 알프스로 스키 휴가를 온 스웨덴 4인 가족의 닷새는 달콤하게 시작되지만 '미션 임파서블'처럼 험난해진다.

찰칵! 다정하게 가족사진 찍는 장면으로 열릴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두 번째 날 재앙이 닥친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펑" 하는 소음에 이어 눈사태가 일어나 정면으로 돌진해 온다. 당신이 영화 속 아빠 토마스(요하네스 바 쿤게)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①방패가 된다.

②가족을 다 데리고 재빨리 피신한다.

③먼저 피한 다음 가족을 구출한다.

토마스 입장에서 이 영화는 비극(悲劇)이다. 방패가 되지도 못했고 가족을 구하지도 못했다. 눈사태는 겉보기엔 무시무시했지만 들이닥친 건 눈먼지일 뿐이었다. 토마스는 스마트폰만 챙겨 혼자 빠져나가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다. 남편과 아빠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린 것이다. 토마스는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에게 그 행동 자체를 부인하면서 더 큰 위기를 자초한다.

음악은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서를 만든다. 이 영화는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겨울 1악장을 반복 재생한다. 도입부의 짧은 음표들이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관객을 쿡쿡 찌른다. 눈사태를 겪은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이 큰 거울 앞에서 이를 닦을 때 전동 칫솔 소리는 가족 관계의 파열음처럼 들린다.

눈사태는 이 가족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덮쳤다. 겉으론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무사한 사람은 없다. 무겁고 냉랭한 침묵이 이어진다.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설산(雪山)은 엄숙하게 서 있을 뿐이다. 부부싸움은 이튿날 더 커지고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이혼할까 봐 근심하며 숨죽여 운다. 스키장에 도착한 친구들은 이 난국에 출구를 만들기는커녕 덩달아 전염돼 감정이 상한다.

영화는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정상으로 올라가는 장면과 스키를 타고 구불구불 내려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충전하기 위해 온 휴가에서 가족 모두 방전(放電)돼 휘청거리는 풍경에 웃다가 안쓰러워진다. 토마스는 결국 실수를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리조트가 떠나가라 울음을 토해낸다. "난 구제불능 인간이야. 그 눈사태에 당신만 희생자가 아냐. 나도 희생자라고."

여기까지가 1막이라면 이 갈등을 봉합하는 후반부가 2막이다. 남편보다 아내가 현명하구나 싶다가도 그래 봐야 '도찐개찐'이라서 다행이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고를 때 우리는 '살고 싶은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포스 마쥬어'는 부부가 서로 싸우고 위로하면서 측은해하는 사이라는 진실을 정갈하게 담아냈다. 부부가 함께 보면 좋을 풍자극이다.

세상을 굽어보며 '가짜 눈사태'로 지혜를 일깨우는 자연의 힘에 새삼 놀란다. 마지막 반전도 즐겁다. 겨울도 여름도 아닌 어중간할 때 개봉한다는 점이 아쉽다.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