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안 점검] 임금 줄이고 복지는 늘려… 勞使 한발씩 양보해 '정년 60세' 열어

"퇴직 송별회가 졸지에 축하 파티로 바뀐 거야. 나처럼 드라마틱하게 정년 연장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지난 3일 충남 서산시 대산읍 LG화학 대산공장. 공장 굴뚝에서 증기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쿵~ 쿵~' 보수 공사 소리가 요란했다. 현장을 돌며 안전 점검을 하던 이 회사 장영석(60) 계장은 당초 만 59세가 되기 직전인 작년 5월 말 정년퇴직할 예정이었다. 장 계장은 "퇴직 전날 저녁에 동료들과 송별회를 하는 자리에서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2011년 정년을 연장(57→58세)한 데 이어, 작년에 또다시 60세로 정년을 연장했다. 그 대신 만 58세부터는 직전 연도에 비해 연봉을 10%씩 깎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 이 회사 전경섭(60) 계장은 "10%씩 연봉이 줄어도 회사를 더 다니는 게 좋다고 보는 직원들의 생각을 노사가 잘 읽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①근로자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내년 1월부터 300인 이상, 2017년부터는 300인 미만 모든 사업장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정년 연장은 근로자에겐 일단 희소식이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양날의 칼'이다. 숙련도 높은 인력을 계속 고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인건비 증가는 큰 부담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20만409곳(2014년 기준) 가운데 9만9184곳(49.5%)이 현재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55세 정년은 전체의 18.7%(3만7481곳), 58세 정년은 19.6%(3만9183곳)에 이른다. 반면 기업들이 선호하는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전체의 9.9%만 도입한 상태다. 정년 연장이 당장 내년으로 다가왔지만 대다수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한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55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풀무원은 '자녀 학자금 지원 확대'라는 묘안을 짜냈다. 56세부터는 연봉을 20% 깎아서 60세까지 주겠다는 회사 제안에 대해 처음엔 노조 반발이 컸다. 2016년부터 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임금을 깎을 이유가 없다는 게 노조 논리였다. 지방 공장마다 노조가 제각각(한국노총 산하 4곳, 민주노총 산하 2곳)이라 협상은 더 어려웠다. 그때 회사 측이 제시한 방안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대신 근속 연수가 높은 직원에게 자녀 학자금 지원 혜택을 늘리겠다는 안이었다. 정년에 가까워지면서 임금은 줄더라도 학자금 지원이 늘어나는 것을 바라는 직원들의 기대를 파악해 버티던 노조를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②임금 체계 바꾸고, 업무 강도 조절하고…

아직 60세로 정년을 연장하지는 않았지만 발 빠르게 대비하는 기업들도 있다. 직원 1200여명이 일하는 캐논은 내년 정년 연장에 대비해 임금 체계 자체를 바꿨다. 직무에 상관없이 일한 기간에 따라 급여를 올리는 연공서열식 연봉제에서, 어려운 일을 맡은 사람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역할급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를 위해 6개월 동안 사내 직무를 분석해 어떤 일이 더 쉽고 어려운지 나눴다. 예컨대 인사팀장과 총무팀장의 업무를 비슷한 난이도로 보고 임금을 똑같게 책정한 반면, 재무팀장은 일이 더 어렵다고 판단해 임금을 더 올려주는 식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캐논 중국 공장에 주문 물량을 더 뺏길 수 없다는 절박함에 임금 체계를 바꾸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인 태성산업은 2012년부터 '직무 분할형 시간제'를 도입해 정년 연장에 대비하고 있다. 업무 난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한 조립 직무의 경우 이미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해, 하루에 5시간씩 주 6일 근무시키되, 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년이 지난 근로자 전체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깎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