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과감한 새 기술에 디자인 더해야 '옛것'도 빛나죠

앞으론 밭이 넓게 트여 있고, 뒤론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광주광역시 신창동 반촌마을 기영락(57)의 공방(工房).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목재와 함께 자동 대패, 수압(手壓) 대패, 실톱, 원형톱, 각끌기(4각 구멍을 뚫는 기기), 드릴, 그라인더 등 공구가 즐비하다.

15평 공간에서 목재를 켜고 다듬는 소리가 고요를 재단하는 듯하다. 한가운데 놓인 목선반의 둥근 톱이 그가 나무를 톱에 대는 각도와 깊이에 맞춰 홈을 파내고 있다. 고속 회전하는 둥근 톱날이 순간적으로 목재를 파들어가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는 "위험하기 때문에 목공예에 입문한 지 10년은 넘은 사람에게만 가르치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가 이 기법을 터득한 것은 목공예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선 2000년대 초반이다. 직선인 목재를 빈틈없이 짜맞추는 전통 기법을 뛰어넘는 발견이었다. 목재의 크기와 형상에 맞춰 깊이·넓이·모양이 다양한 곡면을 단시간에 새길 수 있어 공예 작품의 무궁한 변주(變奏)를 가능하게 했다. 목공예에선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그는 2009년 이 '환(環)톱 측면 절삭 가공법'을 특허로 등록했다.

기영락은 전통 접목(接木) 기법도 크게 진전시켰다. 크고 작은 나뭇조각을 평면적으로 결합해 문양을 만들어 가구 등의 장식품을 만들 때 써온 방법이다. 그는 여러 색종이를 겹쳐 가위로 자른 다음 층을 달리해 섞으면 색이 교차 배열되면서 갖가지 문양이 나타나는 것에 착안했다. 1980년대 중반 이를 목공예에 도입, 여러 층을 겹치거나 일부를 뚫는 등 변형을 주어 '교차 접목' '곡선 접목' '투각 접목' 기법을 개발했다. 이후 이를 논문('목공예 접목 기법에 관한 연구')으로 정리해 석사 학위도 받았다. 구전(口傳)과 도제식 전수에 의존해온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새 기법을 상세히 기술해 누구라도 보고 배울 수 있게 했다.

"광주공고 건축과 시절에 목조각품을 봤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바로 목각점을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죠." 전남 화순에서 농사짓던 아버지는 탈곡기까지 직접 만들던 목수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보고 자란 데다, 아버지의 감각과 재주를 이어받은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목공예점 문을 연 것이 1981년이니 올해로 35년째다.

"거북이와 용을 새긴 바둑판을 많이 만들었어요. 수입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대학마다 공예학과가 생기면서 학생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왔어요. 학생들이 디자인한 것을 내가 제작했죠." 그는 마흔 넘어 광주대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가 석사까지 마쳤다. 그사이 각종 공모전을 휩쓸었고, 7년간 강의도 했다. 주로 서랍, 테이블, 통(용기), 다용도 꽂이, 칸막이 등을 만들어왔다. 주변에선 기영락을 '국가대표 목공예사'라고 했다. 2007년엔 목공예 부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이후 오히려 시장이 좁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과감하게 새 기술을 시도하고, 창의적 디자인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학생들도 디자인만 신경 쓰지 말고, 예술성을 스스로 구현할 기술을 갖춰야 해요." 그는 "실질적 쓰임새의 토대 위에 현대적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갖춘 작품이 늘어야 진정 새롭게 보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로움을 창안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