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인문학의 사전적 해석으로는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과학과 대비되는데, 인간의 가치 탐구와 그 표현 활동이 그 대상이다. 따라서 주관적 존재만이 의미인 사람에겐 그 고유성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문학 최고 고유성의 하나인 인생 나눔에 있어 선뜻 내 것을 내놓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 일임이 분명하다.
물론 학문적 처지에서 보면, 인문학은 지식 중심의 해석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론의 지식에서 생활의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 각국은 행복감을 높이려는 정책으로 삶의 풍부한 경험 요소를 지수화하려 인문학 고양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현 정부도 대통령 직속으로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설치한 것은 그야말로 뭐 특별한 일이 아니기도 한, 당연한 일이라 보인다.
작년 늦여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불기 시작한 <인생 나눔 교실>의 멘토 운영프로그램은 중장년들에겐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필자도 ‘무엇을 기여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확인과 함께 멘토 신청을 하고, ‘새로 또 나를 누군가에게 보이는구나!’ 하며 느지막이 면접을 보고, ‘평생 배워야 해’ 하며 교육을 또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나도 사회의 일원이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일부 멘토들은 자신이 가진 느낌을 다른 분과 공유하는 멘토링 기회도 가졌다.
올해도 정부는 자원봉사를 하려는 250여 명의 멘토에게 약 1,000회에 걸친 멘토링 기회를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은퇴자문화봉사단, 영국의 인생학교 등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으나, 우리만의 독창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성공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에 이어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새로운 차원의 한국 문화 코드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화하는 과정이라고는 하나, 단순히 멘토가 몇 차례 강연자가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한편 문화란 다양한 경험이 어우러져 서로 공감하는 행동으로 묶이는 현상이라고 볼 때, 중장년층의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행동이란 미래를 이어받을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따라서 정부가 펼치고 있는 <인생나눔교실>도, 어떻게 하면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데 장기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선진국일수록 중장년층의 활동 숫자가 높다. 내 주변엔 80이란 숫자를 달고도. 서둘러 출퇴근하거나 밝은 얼굴로 사회 봉사활동, 혹은 취미 활동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대한다. 그만큼 건강하다. 그러기에 이들도 새로운 직업인 층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으나, 중장년층이란 50대 중후반 이상으로 통칭되어 전혀 문제될 것도 없다.
어쩌면 진정한 중장년층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자원봉사자이며, 또한 멘토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현상이 되길 바라보는 마음이야 비슷할 것이다. 물론, 멘토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의 덕목 중 하나는, 특별한 사람이 일반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곧 일반인이 되어 하고, 스스럼없이 많은 사람과 어울려 서로 행복감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태어나서 누구를 돕는 일만큼 숭고하고 행복한 일이 드물다.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은 중장년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주변은 즐거운 웃음소리가 더 크게 울릴 것이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 나 또한 ‘하,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냐!’ 하는 소리를 내고 들어야 할 일이다. 오늘도 얼마나 솔직히 ‘내 경험을 주변인들과 함께 나눌 것이냐! 라는 즐거움으로 계속 숨을 쉬고 싶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