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숫자 이야기를 한 번 만 더 하자. 정말 한 번이다. 꼬옥 세 번 만 하고 말아야지. ‘삼 세 번’ 이란 말이 있다. 한 번, 아니면, 두 번에서 그치지 않고, 세 번 까지는 허용한다는 말이다. 아니, 세 번까지는 꼭 해 본다는 말이다. ‘열(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한 말 보다 더 결심과 의지가 굳다.
동양에서는 1에서 10까지 있다고 생각하고, 서양에서는 0에서 9까지 있다고 생각한다. 출생 나이를 보면 정말 그렇다. 동양에서는 낳자마자 1살이 되는데, 서양은 (0세)몇 개 월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나이를 이야기할 때, 꼭 붙는 것이 ‘만으로’ 몇 살이냐고 한다. 결국 서양식으로 따져서 몇 살이냔 말과 같다.
그러나 중대한 뜻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태교(胎敎)’를 강조해 왔다. 결국 뱃속 아기에게도 나이를 부여하여, 즉 1살 나이가 있는 아기에게도 교육을 했단 이야기다. 물론 어머니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낳자마자 1살이고, 1살이 되어 태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음력, 양력의 섞갈림(특히 두 번 새해를 맞는 것과 간지의 시작)이 정리되어야 하듯이 이의 정리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연령을 만 6세로 하는데, 시골에서는 으례 일곱 살이 되어야 학교에 간다고 말해 왔다. 학년제도 4월 1일이 새학년도였다가 3월 1일이 새학년도가 되고서도 여전히 입학연령은 학년도 후부터 다음 학년도 전까지 같은 학년이 되어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이 같이 공부하였었다. 얼마 전부터는 같은 년도 출생자는 같은 학년이 되어 그런 불합리점이 해소되었다 한다.
다시 생활 속의 수로 들어가 보면, 1보다 크거나 작은 수에 대한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중 일상화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 ‘모호(模湖)하다, 순식(瞬息)간에, 찰나(刹那)에’ 들도 숫자에서 유래된 용어들이다. 또 ‘잘’이 있는데, 숫자 중 ‘정(正)’을 이야기한다. 그 수는 ‘억(億)’을 다섯 번 곱해 얻어지는 수이니, 과연 얼마나 잘해야 ‘잘’ 했다 소리를 듣는 것일까?
생활 속의 숫자 중, ‘애창곡=18번’이 있다. 일본의 전통 공연 예술 중 하나인 가부키가 있는데, 그 가부키 중 18개의 명작을 선정하였다. 그 중 18번 째 작품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전해져 ‘즐겨 부르는 노래’를 뜻하게 되었다 한다. 그 ‘18’번 하나라도 준비해 있지 못하면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 애를 먹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일본식 표기로 18번이라고 말하기보다 애창곡의 우리말로 바꿔서 얘기하는게 좋다.
우선 유모어 하나, ‘하나(1)’와 ‘반(0.5)’이 있었는데, 하나가 반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배나 된다고 우쭐대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반’이 성형외과에 다녀와서, ‘한(1)’에게 큰소리치는 것이었다. ‘자, 이제 날 무시하면 알지?’ 하는 것이었다. 점을 빼고 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숫자의 세계에서도 재미있게 이야기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수수께끼나 금언 격언에 쓰이는가 하면 노래로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세상사와의 우연한 일치를 신기하게 열거하기도 한다. 김삿갓이 지은 숫자 풍자시나, 품바들의 숫자요(數字謠)들은 참으로 우리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 각박한 인심을 풍자하며 파격적인 한자를 쓴 삿갓의 숫자시는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스무(二十) 나무 아래 서러운(설흔 三十) 나그네, / 망할(마흔 四十)놈의 집에서 쉰(五十) 밥을 먹는구나, /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 七十) 일이 있는가. /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 三十) 밥을 먹으리.
끝으로 품바놀이나 하여 볼까? 지금 7,80대 노인들이 어릴 적, 장에 가면 듣던 노래이니, 감회가 새로울 게다. ‘얼씨구나 들어간다. 절씨구나 들어온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일자나 한 자나 들고나 봐라. 일선가신 우리 낭군 제대않고 휴가왔네.
두이 자를 들고나 봐라. 이승만이 대통령에 함태영이 부대통령이라네.
서이삼 자 들고나 봐라. 삼천 만의 우리 민족 남북 통일 만 기다린다.
너이사 자를 들고나 봐라. 사천이백칠십팔년, 대한 독립이 돌아 왔네.
다서오 자 들고나 봐라. 오랑캐 중공군도 물리쳐 삼팔선도 넘겨 쳤네.
여섯육 자 들고나 봐라. 육이오에 집을 태우고 문전걸식이 웬 말이냐?
일곱칠 자 들고나 봐라. 칠십 미리 광포소리 삼천리 강산을 에워쌓네.
여덟팔 자 들고나 봐라. 판문점서 열린 회담에, 영국대표가 나오신다.
아홉구 자 들고나 봐라. 구,군인 생활 삼년 만에 일등병이 웬 말이냐?
남었네, 남었어! 장(10)자나 한 장이 남았구나. 장하도다, 우리 민족. 평화 깃발을 휘날린다. 얼씨구씨구나, 잘도 헌다.‘
*사천이백칠십팔(4278)년은 단기로, 서기로는 1945년, 해방된 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