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緣(군연)으로 뭉친 50명… '老年의 열정'을 노래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로큰롤인생'(2007) 속 노인 밴드 '영앳하트'(Young@Heart)의 단원 평균 나이는 81세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공영주택에 살던 노인들이 소일할 겸 모여 노래 부르다 인생의 황혼기라 여겼던 나이에 '내 안의 열정'을 발견해 간다. '파랑새'를 찾은 노인들의 음악에 세계가 열광했다. 영앳하트는 북미·유럽을 순회 공연하며 즐겁게 나이 들어 간다.

"열정이 없는 삶은 죽음이다. 영앳하트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 김효재(63)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제안으로 홍두승(65) 서울대 사회대 명예교수, 김종완(65)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 김영석(61)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모여 엉뚱한 발상을 한 것이 2013년 말이다. 여기에 김태영(66) 전 국방부 장관, 한민구(64) 국방부 장관이 뜻을 같이했다. 이렇게 '군가합창단'이 탄생했다.

학연·지연·혈연이 아니라, 군연(軍緣) 중심으로 뭉쳤다. 김태영·한민구 장관 등의 군 후배, 홍두승 교수 등의 ROTC 선후배들이 행복한 노년을 향해 합류했다. 주 레퍼토리는 군가(軍歌)다. 평생 노래와 담 쌓고 살아온 남자도 군가만은 제법 부를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지난달 홍두승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서 연습 무대를 가졌다. 50~60대 남성이 목청껏 부르는 군가에 참석자들은 '참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준비 1년 만에 단원은 50명으로 늘었다. 이홍기·권혁순 전 3군사령관, 권태오 전 수도군단장, 이용광 전 3군단장, 김병기 전 레바논 대사, 이서영 전 주미 국방무관, 장윤화 예비역 공군 소장, 허일회 전 65사단장, 이태우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김규진 전 공군 정훈감,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 목진휴·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원종필 건국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병조 국방대 교수, 육정수 전 헌법재판소 대변인, 박병일 한국갤럽 상무, 박홍식 전 한솔PNS 사장, 배기충 대림산업 상무, 최용태 전 삼성코닝 대표, 손재경 호림C&S 대표, 가수 이용·이동은씨 등이다. 지휘는 대구 가톨릭대 음대 학장을 지낸 이판준 교수, 반주는 피아니스트 김지훈씨가 맡았다. 한민구 전 합참의장은 장관이 되면서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합창단은 서울 곳곳 연습실을 전전하며 매달 두 차례 연습했다. 그러다가 덩치가 커지면서 연습 공간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이 논현동 사옥 아트홀을 내주었다.

9일 저녁 삼익아트홀에 모인 회원들은 스트레칭으로 몸부터 풀었다. 이어 발성 연습을 하고 '멸공의 횃불''행군의 아침'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처음엔 발성조차 안 됐는데, 이젠 우렁차게 내뱉습니다."(이판준 교수) 가수 이용씨가 거들었다. "저야 35년간 노래를 불러왔지만, 환갑에 갑자기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런데 장성 출신이 많아선지 발성력이 뛰어나요." 단원들은 김태영 전 장관을 가장 일취월장한 단원으로 꼽았다. 테너 부문 파트장인 그는 "군 시절 추억을 살리고, 건강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잡념이 없어져 좋다"고 했다.

군가합창단의 우선 목표는 '노년을 재미있게'다. 한발 더 나아가 한 해 한두 번 일선 장병 위문 공연도 가질 계획이다. 정식 데뷔 무대는 오는 현충일 즈음 천안함 용사 추모를 위해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전 국방장관·군사령관들의 장병들을 위한 첫 공연인 셈이다. 그 때문에 요즘엔 군가 외에 '아름다운 강산''홀로아리랑' 등으로 레퍼토리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