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녀 체험장 앞바다에서 물질을 끝낸 두 해녀가 망사리를 뒤로 젖힌 채 담소를 나눈다. 바다 밑부터 차오른 초록이 바위 곳곳으로 옮겨 붙었다. 봄이다.
진시황은 필시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회춘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숨쉬는 모든 자에게, 이 질문은 평생을 자극할 궁극의 궁금증일 것. 봄을 맞아 정신과·가정의학과 의사 5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D3면). 대답의 길이는 달랐으나 교집합이 있었다. 해산물(식사), 적절한 운동(육체), 시각적 쾌감(정신). 순간 제주와 제주의 해녀와 만개한 제주의 꽃을 떠올렸다. 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빨리 돌아오는 곳. 푸르고, 다시 차오르고, 새로 시작하게 하는 모든 설렘의 심상이 거기 있었다.
오호통재라,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데 심폐지구력이 바닥이다. 매일 직립 보행하는데 허릿심은 온데간데없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로 간다. 여기 숨 한번 참았다 하면 1~2분은 거뜬하고, 파도와 수압을 물리치고 매일 5시간씩 수십m 제자리 다이빙을 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사계리 해녀 체험장에서 40년 경력 해녀 김연선(62)씨가 "하루만 물질해도 몸이 탁 트일 것"이라 한다. 오늘 하루 해녀가 되기로 한다.
물질하며 캔 톳, 홍해삼, 소라, 보말(맨 밑부터 시계 방향).
온몸에 물칠을 하고 고무옷을 입는다. 상·하의 일체형 슈트다. 꽉 끼는 고무 모자를 쓰고, 5㎏ 정도 나가는 뽕돌(연철·鍊鐵) 2개가 달린 허리띠를 허리에 감는다. 잠수 시 부력을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오리발을 신고 저벅저벅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바위에 붙은 해초 하나를 뚝 꺾어 수세미처럼 물안경을 닦는다. 그러곤 인중까지 덮어쓴다. 이제 코로 숨 쉬는 건 불가하다.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대며 산소를 마셔야 한다. 간만에, 폐 풀 가동이다. 배구공 같은 테왁(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부력 도구)을 튜브 삼아 깊은 물로 들어간다. 깊어봐야 썰물 때라 수심 2~3m 남짓. 수영을 못 해도, 나이가 많아도 체험이 어렵지 않은 이유다.
물 밑은 벌써 완연한 봄이다. 바위엔 미역·톳 같은 해초가 지천이고 구멍마다 성게·소라 따위의 저등 생물이 동네 바보처럼 졸고 있다. 사냥감이 포착되면,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자. '곧장 돌진'의 저돌적 도시 마인드를 잠시 내려놓고, 일단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와 공기 한 모금 여유를 갖도록 한다. 그래야 숨 모자라 헐떡이지 않게 된다. 해녀 이옥선(61)씨가 '휘이' 숨비소리를 낸다. 오랜 잠수 끝의 날숨이 휘파람 같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은유다. 저 멀리서 김씨가 문어를 잡았다. "오늘은 재수가 좋다"며 웃는다. 지천에 널린 홍해삼이나 소라 따위를 골갱이(호미)로 캐 망사리에 넣는다. 뒤편의 산방산, 코앞의 형제섬이 전복 껍데기처럼 푸르다.
물속이 외려 따뜻하다. 이날 오후 3시 수온이 13.7도였는데, 물 밖 온도는 12.8도였다. 수온이 더 올라가는 다음 달부터 제주 한림읍 해녀학교를 비롯한 제주 곳곳의 해녀 체험장이 문을 연다. 따뜻한 파도가 몸통에 살살 부딪칠 때마다 한 마리 다금바리가 된 기분이 된다. 살짝만 꺾어도 우두둑 울부짖던 허리가 차츰 유연해진다. 1시간의 물질을 마치고 파래가 잔디처럼 핀 바위에 걸터앉는다. 망사리를 엎는다. 소라·솜·보말·미역·매웅이…. 초록이 쏟아져 나온다.
체험장 바로 앞 덕성식당으로 가 건진 놈들을 삶아 먹기로 한다. 제주 해녀들이 보리밥에 밭에서 딴 채소랑 해산물을 넣고 대충 비벼 먹는 걸 낭푼밥상이라 한다. 담수에 깨끗이 씻어 저민 홍해삼의 근육질 속살이 쫄깃하다. 파래랑 오동통한 톳이랑 집어 아무렇게나 입에 구겨 넣는다. 입안이 파래진다. 역시 3월의 바다와 회춘(回春)은 동의어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