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13 17:01

뮤지컬 '봄날' 리뷰

"얼마나 더 가야 해요?"

"봄볕 한 줌만큼만…"

봄볕 한 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무대 위로 시선을 끌어올린다. 봄볕과 고무신. 무대는 봄의 강한 느낌을 전달하려는 듯 연초록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작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듯한 느낌으로 잠시 날리던 눈발을 잊게 한다. 봄날의 콘셉트에 맞추어 얇게 입고 나간 윗옷이 몸을 오스스 떨리게 하던 조금 전의 느낌을 연초록의 색이 거두어 간다.

동아 연극상 3개 부문 수상작 연극 <봄날은 간다>가 Poetic Musical로 새롭게 선보이는 무대 위의 색감으로 전달하는 긍정의 기운이다. 무대 위를 떠도는 영혼은 분홍의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지만 백 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의 부질없음에 흔들리고 있던 내 마음속 회의감을 죽음 저편의 세상이 아닌 긍정으로 전환을 시켜 주기 시작한다.

[시니어 에세이] 봄볕 한 줌만큼만

찰나의 생에서 만나는 바라봄의 전환으로 변화시켜가는 따스함의 시선이다. 생을 어떤 시선으로 맞이하는가에 따라서 변화되어 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내 몸의 진통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만나게 된 인연이 아닌 가슴으로 낳은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먼 길을 걸어왔을 고단함의 무게가 어머니의 고무신 한 켤레로 전달이 된다.

오래전 내 곁을 떠나간 어머니의 고무신을 가슴에 품고 있는 딸의 회상은 어머니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켜 준다. 말이나 글의 설명이 아닌 형상으로 보여주는 존재의 확인이다. 따스한 봄볕 한 줌이 가득한 들판에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꿈길을 걷어가는 듯 오래전 추억의 시간을 두 사람이 찾아간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 어머니가 이어놓은 사랑과 따스함이 두 사람을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주었다. 인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생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의 설정이었을까? 문학에서 표현되는 단어들이 나열하는 특별함의 가치에서 만나는 일상의 소소 함들이 가슴에 묵직하게 담겨오는 시간이었다.

꼭 만나야 하는 인연은 어디에선가 만난다는 삶의 순리이다. 이 세상을 오게 되는 날에 삼신할머니가 보이지 않은 빨간 끈으로 묶어 놓았다는 인연이 확인되는 시간에 무대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거창함이 아닌 동산 위에 피어난 봄꽃들의 색감으로 잔잔하게 이어진다. 오히려 극적인 반전이 없는 무대는 지루하다는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 잔잔함이 젊은 감성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시니어 에세이] 봄볕 한 줌만큼만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한 어머니에 의해서 두 사람은 오빠와 여동생으로 만난다. 모래알들이 모이고 모여서 넓은 백사장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두 사람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사랑보다 더 깊은 정(情)의 형태를 만들어 간다. 어머니는 오누이의 인연을 강조하지만 불꽃 같은 젊음은 어쩌지 못하는 사랑으로 가족이 된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은 이미 예정된 약속으로 세 사람을 만나게 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무대는 막을 내린다.

봄날은 질기고 질긴 인연의 긴 끈을 잡고 그 길 위에서 시로서 형상화되어 감성 한 자락을 가슴에 머물게 한다. 세상에 당당하지 못한 애틋한 사랑이지만 가슴 한구석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의 노래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절절함이 가슴 한구석에 밀물처럼 다가와 객석 곳곳에서 젊고 여린 감성들의 흐느낌이 잔잔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배려와 인연. 외롭고 서러운 두 사람의 삶에 사랑이라는 선물을 남기고 떠나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시간이 푸른 불빛으로 비추어 지고 있던 고무신에 시선을 머물게 하였다. 아직도 딸 수아는 어머니의 고무신을 간직하고 있다. 그 고무신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녀를 지켜주는 깊은 애정이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두 사람이 걸어가는 봄날의 길 위에서 풀어가는 한 생의 기억들이 노래와 시로 아름다운 감성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봄바람에 펄럭이는 분홍의 두루마기 자락이 너무 고와서 오히려 서럽게 다가오던 시간이었다. 진한 인연 한 자락이 분홍빛 두루마기 자락을 흔들듯이 내 옷깃에 머물러 서러운 바람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 서러운 바람이 떠나갈 때쯤에는 두 사람의 사랑처럼 따스한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지니게 하면서 나는 아직도 믿고 있는 것들이 있다. 추억이 떠나간 자리에도 분명히 사라지지 않고 남겨지는 것들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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