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서 '한드' 열풍… 軍 지도자도 史劇 즐겨"

미얀마 각료들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이야기로 회의를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서울 가로수길과 홍대앞, 부산 남포동 거리를 미얀마 골목길만큼 꿰고 있다. 한류(韓流) 덕이다. 미얀마에서는 아침 드라마부터 주말 예능까지 한국 TV 프로그램이 전파를 장악하고 있다.

이 한류 열풍의 주역이 음윤희(58·사진)씨다. 2002년부터 1000편의 '한드'가 그를 통해 공급됐다. 음씨는 한국 문화 콘텐츠를 미얀마어로 번역해 배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989년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미얀마로 발령 받은 게 시작이었다. 음씨는 양곤외국어대 미얀마어학과에 입학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폐쇄적인 사회주의 나라인 데다 외국인이 미얀마어를 공부하려고 대학 가는 일도 드물었기 때문이죠. 제 입학 안건이 각료회의에까지 상정됐대요." 졸업 후 음씨는 '선녀와 나무꾼' 같은 우리 전래동화들을 미얀마어로 옮겨 책을 냈다.

6년 후 한국에 온 그는 서른아홉에 한국외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논문은 '미얀마와 한국의 사회주의 문학 비교'를 냈다. 졸업을 앞두고 양곤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를 얻었다. 다시 미얀마로 가서 3년간 한글을 가르치고 교재도 만들었다.

"그 무렵 TV를 보니 온통 일본과 중국 드라마더라고요. 우리 드라마를 틀면 대박 나겠다 싶었죠." 한국 방송국과 프로덕션을 돌며 수출하자고 설득했다. 오랜 미얀마 생활 덕에 미얀마 쪽 접촉은 어렵지 않았다. 예전의 미얀마 제자들을 모아 대본 번역에 나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는 "12개 채널에서 동시에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 날도 있다"고 했다. 이순신·태종·세종대왕·대조영을 다룬 사극도 공급했다. "군부 지도자인 탄쉐 장군이 사극을 즐겼어요. 드라마 방영 시간을 피해 회의할 정도였으니까요. 휘하의 장군과 장관들도 한국 드라마를 볼 수밖에요."

올해 초엔 미얀마 방송사가 채널 공동 운영을 제안해 한류 콘텐츠 전문채널 '4-ladies'를 개국했다. 미얀마에 발 디딘 지 26년 만이다. 그는 "미얀마가 시장을 개방한 뒤 미국·유럽·일본·중국 자본은 급속히 들어오는데 한국 기업과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며 "한류로 시작된 긍정적 이미지를 발판 삼아 서둘러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