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동호회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공지가 떴을 때 지리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재빨리 참가 신청을 하였다. 몇 년 전 지리산 둘레길이 처음 생겼을 때 늦은 밤 11경 서울에서 출발하여 버스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어둠과 축축한 안개로 덮인 지리산에 첫발을 내딛던 생각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지리산을 밟았다는 생각에 혼자 가슴이 뛰던 생각도 나고.
이번엔 죽전 고속도로 간이역에서 오전 7시 20분 출발하여 3시간 반 정도 달려 남원 땅에 도착하였다. 간밤에 잠을 설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지만 집에서 주말을 뒹구는 것보다는 반가운 길벗들과 도보여행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지리산 길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전북, 전남, 경남 3개 도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5개 시 군,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85km의 장거리 도보 길이다. 각종 자원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 길 등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길이다. 이번에 내가 걸은 지리산 둘레길 1코스는 남원 주천에서 운봉까지의 약 15.5km 거리이다. 주천의 내송마을을 지나 가파른 구룡치에 올라서면 편안한 마을 길을 걷는 구간이다.
겨울이라 숲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지만 지리산 둘레길 1코스에는 몇백 년씩 된 소나무 군락지가 여러 군데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는 세월과 자연 앞에 지나가는 한 점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양손엔 스틱을 짚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 1시간 정도 지나자 무거웠던 몸이 깨어나는 듯 온몸에 땀이 흐르고 숨은 거칠어지고 심장은 정상적으로 펌프질하고 내 몸의 세포들은 하나둘씩 살아난다.
이번엔 겨울 끝자락이라 걷는 내내 바람도 차고 날씨가 흐려 햇빛도 없다. 걷기에는 좋은 날씨이다. 주천에서 길을 걷기 시작점이 가파른 산길이어서 몇 번 깔딱고개를 넘었다. 덕분에 입고 있는 옷으로 땀 조절을 해야만 한다. 땀이 흠뻑 젖도록 내버려두면 젖은 옷이 몸에 있는 열을 앗아가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나는 자칭 자체발열이 안 되는 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도보 중에는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땐 우선 장갑을 벗어 열을 빼주고, 그다음엔 모자를 벗어 머리 열을 날려준다. 다음에 워머를 벗어버리고, 그다음에는 겉옷을 하나씩 벗어 땀 조절을 해준다.
배낭 속엔 물과 도시락, 간식과 비옷, 아이젠, 깔개 등 비상용품이 들어있다. 걸을 땐 매식할 곳이 없어서 가끔 따듯한 물과 도시락을 준비한다. 오늘은 바람도 차고 날씨가 흐리고 햇빛도 없다. 우린 바람이 잦아드는 아늑한 무덤가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몇 명씩 둥글게 자리를 펴고 각자 마련해온 도시락을 꺼내면 우리 점심은 훌륭한 뷔페가 된다.
가져온 간식들도 꺼내어 후식으로 먹고 따끈한 차 한 잔씩 마시면 훌륭한 점심이다. 담소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나면 몸은 열이 식어 금방 추워진다. 빨리 일어나 다시 출발.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는 좀 여유롭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추억을 만들 사진도 찍으며 유유자적 길을 걷는다.
오늘 걸은 길은 남원땅 주천면 - 내송마을 - 솔정지 - 구룡치 - 회덕마을 - 노치마을 - 덕산저수지 - 질매재 - 가장마을 - 행정마을 - 양묘장 - 운봉읍까지 지리산 둘레길 1코스이다. 지금까지 19개의 코스가 만들어졌다 하니 우리나라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아름다운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