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19 10:13

역시 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게 답이 빨랐다. 건강검진 후 통보받은 결과에 궁금증이 생긴 때문이었다.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으로 정상체중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습니다. 진료상담 하십시오.’ 체중이 좀 나간다거나 기름진 육식을 즐긴다거나 하면 답을 바로 알아챌 수 있으련만 그게 아니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수강생들이 대부분인 한 강좌에서 친해진 인생 선배들에게 털어놨다.

“제가 마른 비만이란 건가 봐요. 체중이 낮은 것도 문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것도 문제라네요.”

수치가 어느 정도기에 그러냐고 한 분이 묻고 나섰다. 200 미만, 적어도 230 미만까지는 돼야 이상이 없는 거라고 나와 있던데 260 가까이 된다고 하니까 자기는 280이 넘었었단다. 듣고 보니 체중에서나, 식습관에서도 나와 비슷한 분이어서 이어지는 말에 귀가 쏠렸다. 특히 ‘과일 없이는 못 산다’는 점이 똑같았는데, 그분은 ‘바로 그게 문제’란 ‘진단’을 내게 내렸다. 콜레스테롤 치료로 유명한 대학병원 의사에게서 자신이 받은 진단이라고 그랬다. 과일이 문제라는 건 뜻밖이었다. 하기야 요즘 과일은 당도가 보통 높은 게 아니다.

[시니어 에세이] 허기와 포만 사이

하루 사과 몇 쪽, 포도 몇 알 메모를 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고 의사 지시대로 먹는 게 쉽지 않다는 그분은 그래도 병원 가는 날이 가까워지면 지키려 애쓰다가 다녀온 후엔 참았던 걸 다 먹는다며 웃었다. ‘과일 먹는 게 사는 낙인데 그마저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반문도 달았다. 혼자 사는 그분에게서 느껴진 것은 ‘마음의 허기’였다. 옆에서 듣던 다른 분들도 둘이 살거나 셋이 살거나 비슷한 처지란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퇴직 후 한두 해 나이 들어가며 나 또한 느끼고 있는 허기이기도 하다.

과일도 과일이지만, 식후 달달한 디저트가 없으면 서운한 습관까지 붙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과잉된 달콤함이 중성지방으로 변하면서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였는가 보다. 좀 참아야지 싶어 초콜릿이니 케이크, 머핀, 쿠키들에는 지갑을 열지 않으려고 작정한다. 그러다가도 밖의 회합에서 이 유혹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자제심의 반작용인지 그예 넘어가 몇 개 집어먹고야 만다. 겉도는 말만 무성한 모임이 되는 경우에는 몇 개 정도가 아니다. 밥이며 디저트를 향한 손길이 멈춰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돌아가는 길에는 허기가 스며드니 웬일인가.

명절에 모처럼 온 가족이 풍성한 밥상에 둘러앉고 나서도 그럴 때가 있다. 집집을 들여다보면 함께 수저 드는 자리를 아예 피하려는 가족 구성원이 한둘 있기도 하다. 가족들조차 내 속을 몰라주는데, 먹고 허기지느니 아예 안 먹고 말지 하는 건 아닐까.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가족이라 해서 서로 다 이해하고 이해받기란 쉽지 않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 부분이 있었다. 영화의 마무리쯤 한 지붕 아래 대비됐던 두 장면에서였다. 거실에서는 자손들이 웃고 떠드는데, 슬그머니 옆방으로 건너온 주인공 덕수는 선친의 사진을 붙들고 흐느낀다.


정서적으로 흔들릴 때

마음의 허기는 몸의 허기와는 달리 한 끼 식사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실 몸의 허기도 그리 쉽게 포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공복혈당과 물리적, 화학적 신호체계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과학적으로 정상 작용해야 가능한 거란다. 그래야 음식을 적당히 먹어서 혈당이 올라가면 포만감이 느껴지고 식욕도 사라지며 행복감이 들게 된다. 그러나 이런 체계를 망가뜨릴 만큼 자극을 주는, 특히 단맛과 짠맛은 더 큰 자극을 갈망하게 하면서 포만감을 잊고 계속 먹게 만든다고 한다.

몸의 포만과 허기 사이 엇박자가 생기는 것이다. 박자를 맞추려면 달고 짠 음식부터 차차 줄이고 껌 씹기, 말하기, 물 마시기에 입을 사용하라는 권고다. 배부른데도 그치지 않는 몸의 허기는 이렇게 해소해 간다지만, 몸과 뗄 수 없으면서 훨씬 복잡다단할 마음의 허기는 어떻게 하나. 미국의 학자 로저 굴드는 우리 몸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위장이 있다고 했다. 이 ‘유령 위장’은 굶었을 때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흔들릴 때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외로울 때,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절망스러울 때 느끼는 마음의 허기다.


늘 주려 있으라

그러나 마음은 물론 몸의 허기까지도 잘 느끼지 않게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와 아주 가깝게 느껴지거나, 마음을 열고 화해했거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때다. 누군가와의 친밀함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가능한 게 아닌 바에야, 지금 그 누군가가 없다면 스스로 자랑스러워질 만한 일을 만들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일상의 소소한 결심을 실천하는 데서부터 인생을 걸고 목표를 추구하는데 이르기까지 무엇을 하든 온전히 자기에게 달린 일이다. 

이때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 가운데 그 유명한 ‘늘 주려 있으라. 우직해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은 큰 힘이 되어 주는 조언이다. 2002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도 마음의 허기를 도전과 도약으로 이끌어 주는 말이다. 지난 세월 이런 ‘헝그리 정신’이야말로 이제 시니어들의 자랑스러운 훈장이자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게 포만으로 치닫는 요즘, 허기의 정신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포만과 허기 사이 엇박자를 되레 촉발시키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이미 포만에 이르러 오히려 부담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의아해하고, 묻고, 발견해 가자는 ‘Stay hungry’ 움직임이다. 포만보다는 허기에서 최선의 사고와 더 나은 성과가 보이곤 한다는 점이 최근 새삼 주목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허기는 결국 어떻게 달래 가느냐에 따라 스스로 자랑스러워지는, 아니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걱정될 수도 있는 포만에 이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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