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25 09:57

봄꽃 명소하면 떠오르는 여의도 윤중로, 경남 진해. 하지만 누구나 아는 그곳을 선택하는 순간, 벚꽃송이 못지않게 많은 사람에 치이는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올봄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면 어떨까.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마음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수도권 꽃놀이 명소 4곳을 소개한다.

아침고요수목원

여행작가 정보상

서울 근교의 명산 축령산에 봄이 오면 아침고요수목원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겨우내 잠잠하던 정원 이곳저곳은 화사한 봄나들이 옷으로 갈아입은 꽃들이 부르는 노래로 축제 분위기다. 이름 모를 들꽃과 꽃 이름이 새겨진 푯말을 살펴봐야만 이름을 알 수 있는 생소한 꽃들이 한 덩어리 꽃 뭉치가 되어 눈길을 잡아끈다.

▲키 작은 정원수로 풍성하게 꾸며진 아침고요수목원.
▲키 작은 정원수로 풍성하게 꾸며진 아침고요수목원.

대학교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던 어느 교수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아침고요수목원.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5년에 문을 열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칭송한 것에서 수목원 이름을 따왔다.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울타리 안에 들여놓기 위해 애썼다는 설립자의 변(辯)을 전통가옥이 있는 입구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색의 어울림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리빙스턴 데이지.
▲다양한 색의 어울림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리빙스턴 데이지.

사철 언제 찾아가도 좋지만 봄에 특히 아름답다. 한국적인 정원으로 꾸민 원예수목원이라 동요 ‘고향의 봄’이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다. 여기에 우리 꽃뿐만 아니라 데이지, 마가렛, 팬지, 아네모네 등 외국 꽃들도 화려함을 자랑한다.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자라는 식물은 키가 작다. 대부분 정원수이기 때문이다. 정원 사이로 난 길도 키 작은 식물 구경에 알맞게 평탄해서 걷기 편하다. 그래서 아직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나 걷기가 조금 불편한 어르신을 모시고 산책하듯이 다녀오기 좋다. 햇볕 괜찮은 날 발 편한 신발을 신고 수목원 구경을 다녀오자.


양평 산수유 마을

경기관광공사 홍보사업팀 김연진 과장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내리와 주읍리에서는 매년 4월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내리와 주읍리에서는 매년 4월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꽃의 축제가 한창이다.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면 양평에도 어김없이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양평 산수유·한우 축제’는 4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축제의 주 무대인 개군면 내리, 주읍리 일대는 산수유나무 군락지로 7천여 그루가 군집을 이루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수유나무를 비롯해 몇백 년은 족히 살아온 산수유나무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꽃 잔치를 벌인다.

▲산수유는 작은 꽃이 모여 하나의 꽃을 완성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산수유는 작은 꽃이 모여 하나의 꽃을 완성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축제 행사장인 레포츠공원에서는 양평 한우이벤트, 초청가수 공연과 노래자랑, 밤에는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펼쳐진다. 축제 기간에는 레포츠공원에서 산수유 마을까지 임시 노선버스를 운행한다. 산수유 마을에서도 산수유 인절미 떡메치기, 장착 패기 등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수수부꾸미, 빈대떡, 도토리묵, 산수유 동동주 등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축제의 흥을 돋운다.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꽃향기에 취하고 싶다면 축제를 피해 찾아가는 것도 좋다.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마다 꽃향기 피어나는 산수유 마을에는 봄날의 행복이 가득하다.


창경궁

여행 전문 사진작가 조혜원

봄바람에 산화하는 꽃. 벚꽃만큼 봄의 스침을 느끼기 좋은 꽃도 없다.

▲창경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벚꽃놀이가 시작된 곳이다.
▲창경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벚꽃놀이가 시작된 곳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 신호 대기 중 차 안에 앉아 고개를 돌렸을 때 창경궁 입구의 네모난 프레임 안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꽉 막힌 도로 위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연분홍의 벚나무가 느긋하게 봄바람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궁을 배경으로 한 흐드러진 벚꽃의 아름다운 모습.
▲고궁을 배경으로 한 흐드러진 벚꽃의 아름다운 모습.

번잡한 여의도는 피하고 싶고, 진해까지 내려가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창경궁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창경궁의 벚꽃은 아픈 역사와 봄꽃놀이의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제 위신을 다시 찾으며 꽃 터널을 이루던 벚나무를 여의도와 어린이 대공원으로 옮겨 심었으니 창경궁 벚나무는 그들과 형제인 셈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여유 있게 봄을 느끼며 창경궁의 단청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벚꽃을 담아내기 좋은 곳. 올봄엔 창경궁으로 꽃놀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국립 서울 현충원

대전교통방송 작가 박은영

▲수양버들처럼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수양벚꽃. 조선시대 17대 왕인 효종이 활 제작 재료 확보를 위해 많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양버들처럼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수양벚꽃. 조선시대 17대 왕인 효종이 활 제작 재료 확보를 위해 많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무거운 바람이 가벼워지면 어김없이 봄날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기분 좋게 살결을 스치는, 살랑대는 봄바람을 마주하게 되는 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곳이 있다. 바로 국립 서울 현충원이다. 가장 먼저 현충원 정문을 들어서면 국가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을 위해 세운 충성 분수대에 눈길을 빼앗긴다. 하지만 이내 그 뒤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각종 봄꽃으로 시선이 옮겨가게 된다. 청아한 새소리로 가득한 이른 봄에 현충원을 찾아가면 새 잎과 새 꽃을 내놓기 위해 곧게 손길을 뻗는 나뭇가지들을 만날 수 있고 봄이 무르익어갈 때면 바람에 한들한들 날리는 화려한 수양벚꽃을 볼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 뭉클함을 자아내는 현충원 정문의 충성분수대.
▲보는 것만으로 뭉클함을 자아내는 현충원 정문의 충성분수대.

 

▲현충원에는 벚꽃, 철쭉, 목련뿐 아니라 허리를 굽혀야만 볼 수 있는 작은 들꽃이 곳곳에 숨어 있다.
▲현충원에는 벚꽃, 철쭉, 목련뿐 아니라 허리를 굽혀야만 볼 수 있는 작은 들꽃이 곳곳에 숨어 있다.

뽀얀 속 얼굴을 보여주며 현충원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꽃을 볼 때마다 내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 스무 살의 설렘이 다시금 찾아오는 듯하다. 그렇게 봄바람을 가로지르며 여유롭게 현충원의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꼭 마주하게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다. 아무도 이름 불러주지 않는 그 들꽃을 보면 어느새 설레던 맘은 애달파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묵묵히 봄을 지키는 들꽃처럼 수십 년 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선조들의 마음도 꼭 그러했을 것이다.

▲눈부신 분홍빛을 자랑하는 철쭉.
▲눈부신 분홍빛을 자랑하는 철쭉.
▲봄을 준비하는 개나리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
▲봄을 준비하는 개나리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

‘꽃이 아름다운 사람은 내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봄꽃을 찾아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치 긴 겨울잠을 잔 내 메마른 마음에, 또 나의 건조한 삶에 화려한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봄꽃 이름만큼 쉽지 않은 게 인생이고 하루하루 바쁘게만 돌아가는 날 속에 잊혀지고 잃어버리는게 많은 시간. 그리고 지금. 아름다운 꽃과 동행하는 그 순간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