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바퀴도 가끔은 쉬고 싶다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운전하고 가는데 스치는 사람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영 이상했다. 마트에 도착하는 즉시 차를 한 바퀴 죽 둘러보고서야 터진 걸 알았으니 나도 참 무디다.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서 한눈에도 펑크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차가 질질 끌려온다는 느낌이 들긴 들었었다.

마침 마트 이층에 자동차 서비스센터가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서비스센터 남자가 작업복을 입은 채 웃으며 차에게 말을 건넨다. ‘아따, 너도 주인 잘 못 만나 고생하고 있네, 차가 펑크가 난 지도 모르고 끌고 다녔으니 너도 참 고생깨나 하겠다.’ 아저씨는 안됐다는 듯 찢어진 바퀴를 슬슬 어루만진다.

갑자기 민망함이 밀려든다. 자동차에 미안하기도 하고 무심한 내 마음이 아저씨에게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찢어진 곳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바퀴는 힘겨웠다는 듯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어제도 강릉을 다녀오느라 아침부터 밤까지 굴러야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굴렸으니 상처가 덧나도 한참이나 덧났을 터였다.

황동규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려보고 싶다고 했다. 바퀴와 친밀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난 바퀴에 무관심하다. 그것이 굴러가는 바퀴나 멈추어 있는 바퀴나 내겐 별 의미가 없다. 그저 굴러가는 모양이라고, 아님 서 있네, 정도의 아는 체를 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차는 5년이 훌쩍 넘었어도 아직 2만km도 굴러가지 못했다. 그러니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한 내 차가 서비스센터 남자 말대로 주인을 잘 못 만나긴 했다.

어디선가 읽은 생각이 난다. 인류의 발전은 굴러가는 바퀴의 속도와 비례한다든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인류 문명의 원동력은 바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퀴의 역사 제일 앞에는 굴림대가 있다. 먼 옛날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마야나 잉카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이 굴림대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굴림대는 곧 어느 누군가에 의해 잘려 둥글게 굴러가게 되었고 바퀴축이나 바퀴살도 만들어 붙이며 점점 속도를 더 하게 되었다. 속도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세상은 가까워지고 사람 사이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오늘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 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에 산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바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는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다 이 바퀴의 힘이다. 이 시대는 바퀴의 세상이다. 바퀴가 세상을 돌아가게 하니 사람들은 바퀴에 세상을 맡겨두고 여유롭게 한가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부터 그렇게 살지 못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면 속도가 붙어 갈 수록 다람쥐의 발놀림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딱 이 모양이다.

역사의 바퀴가 너무나 급하게 우리를 이곳에 데려왔다.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바퀴들이 종횡무진으로 달린다. 디지털이란 바퀴를 달고 인터넷 세상에서 초고속으로 시공간을 오가는 요즘의 세상이다. 누가 감히 이 세상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무한의 속도가 붙은 바퀴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요즘은 그 무한한 질주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퀴도 가끔은 쉬고 싶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바퀴에게’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달리느라 마구잡이로 뭉개진 길가의 작은 꽃들이 있음을 바퀴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마 바퀴들도 가끔은 주저앉아 뭉개지고 치여도 피어나는 그 작은 들꽃들을 보고 싶을 것이다. 흘러가는 구름이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