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0 09:55

베트남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조 쌀국수(pho)의 맛이 궁금해서였다. 20여년 전에 호주 시드니의 이름 모를 베트남식당에서 처음 먹어본 쌀국수는 맛의 신세계였다. 분명 고기국물인데 설렁탕이나 곰탕과는 다른 감칠맛에 놀라고, 뜨거운 국물에 수북하게 제공되는 익히지 않은 생숙주와 생야채(허브)를 직접 넣어먹는 생소한 음식 문화도 놀라웠다. 그리고 그렇게 진한 고기 국물과 소고기 양지수육을 푸짐하게 넣어주는데도 가격은 호주에서 먹었던 식비 중에 가장 저렴했다.

그렇게 쌀 국수를 접해본 후 베트남 여행을 결심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오다가 2015년 4월 베트남의 경제수도라 칭하는 남부의 대표도시 호치민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북에 걸쳐 길게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의 최북단은 중국과 맞닿아 있고 남쪽은 타이만에 닿아있어 남북의 길이가 총 1,650km에 달한다. 이 거리는 경부 고속도로의 약4배에 해당하는 먼 거리이다. 우리나라가 영호남의 음식이 확연하게 다르고 남북한의 음식문화가 차이 나듯이 1,650km의 긴 국토를 가진 베트남 역시 북부 하노이식과 남부 호치민식의 음식이 서로 닮은 듯 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여, 쌀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식당마다 서로 다른 맛을 보여줌으로 먹는 이를 즐겁게 해주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쌀국수 이외에도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워 쌀국수와 함께 느억맘 소스에 적셔 먹는 ‘분짜’(Bún chả)와 얇게 구워낸 쌀가루 전병에 새우와 돼지고기, 숙주를 넣어 만든 ‘반세오’(Bánh xèo) 같은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서 하루에 세끼밖에 먹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래에 소개하는 식당들은 베트남 전통음식만을 하는 전문식당으로 현지인들에게 사랑 받는 로컬식당과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프렌차이즈까지 성공한 대형식당 중에 여행객이 접근 용이한 지역에 있는 식당을 선정해 소개한다.


포호아 파스퇴르(PHO HOA Pasteur)

주소 : 260C Pasteur, Quan 3, Ho Chi Minh City
 
호치민 쌀국수의 대표 맛 집이며 여행후기나 현지인의 추천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집이다.

베트남 쌀국수의 유래에 대해 잠깐 얘기하면, 쌀국수는 원래 베트남 북부지방에서 돼지고기나 닭육수에 국수를 말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었는데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 되면서 많은 북부 베트남인이 남부 베트남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렇게 북부 베트남을 떠나 남부 호치민 지역까지 내려온 이주민들이 생계 수단으로 북부지역의 음식이었던 쌀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음식이 되었다.

이후 월남전쟁을 겪으며 남부 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군의 입소문과 월남 패망 이후 월맹정권을 피해 세계 각국으로 이주한 베트남 출신 피난민을 통해 쌀국수는 전세계로 알려졌다고 한다.

포호아도 1960년대에 현재의 위치에서 노점으로 시작한 것이 크게 성공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호치민 쌀국수의 대표 맛집이 되었다. 참고로 미국과 우리나라에 있는 동명의 쌀국수 체인점과는 무관하며 호치민 내에도 이 본점 이외에 지점은 없다.

▲포호아 파스퇴르 입구 전경
▲포호아 파스퇴르 입구 전경.

포호아는 시내 중심지인 중앙우체국 Saigon Central Post Office에서 약 1.7km떨어져 있어 걷기에는 멀고 택시를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포호아가 현지인에게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 있는 사례로, 택시기사에게 포호아의 주소를 말하는 것보다 위에 있는 포호아의 식당 사진을 보여주면 거의 모든 택시기사 한눈에 알아보고 출발한다.

식당을 들어서면 1층에는 주방과 좌석이 있고 2층과 3층에도 좌석이 있다.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는 3층까지 모든 테이블이 다 차서 합석은 기본이고 대기 줄도 길다.

▲포호아 기본 상차림(사진 왼쪽)과 사이드 메뉴(사진 오른쪽).
▲포호아 기본 상차림(사진 왼쪽)과 사이드 메뉴(사진 오른쪽).

무료로 제공되는 각종 소스와 라임. 그리고 쌀국수에 넣을 생야채(허브)가 미리 준비되어 있고 한편에는 유료인 사이드 메뉴 등이 올려져 있다. 사이드 메뉴는 먹은 갯수 만큼 나중에 계산하면 된다. 기본으로 주는 라임이나 야채가 우리나라 쌀국수 집에서 레몬을 얇게 썰어 그것조차 4/1쪽으로 나누어 주는 것에 비하면 호탕하다고 표현할 만큼 푸짐하게 제공된다.

▲퍼찐 PHO CHIN – 양지살 쌀국수.
▲퍼찐 PHO CHIN – 양지살 쌀국수.

MSG맛이 아닌 진짜 고기국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유명 곰탕집 국물과 비슷한 느낌이다. 고기국물이 맑지만 진하고,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제대로 된 고기국물이다. 여기에 라임 한쪽과 매운 소스인 해선장 소스, 그리고 숙주와 야채를 넣으니 개운함과 시원함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쌀국수 면발도 생면을 사용해서 무르지 않고 적당히 씹히는 식감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 중에 하나가 위 사진처럼 테이블 위에 준비 되어있는 ‘꿔이(quay)라는 막대모양의 튀김을 쌀국수 국물에 적셔 먹는 것이다. 꿔이는 그냥 먹으면 맛없고 딱딱한 밀가루 튀김일 뿐이지만 쌀국수 국물에 적셔 먹으면 튀김에 국물의 간이 베이고 국물의 수분으로 인해 식감마저 폭신해져서 고소하면서 녹진한 맛을 보여준다.

맛있게 쌀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지불한 금액이 퍼찐 PHO CHIN’ 65,000동, 꿔이 quay 1개 4,000동, 냉차 TRA DA 1잔 2,000동 총합계 71,000동으로 한국 돈으로는 3,550원이다. 맛도 가격도 만족스러운 베트남은 진정한 식도락 천국이 아닐까 싶다.


퍼뀐(Pho Quynh)

주소 : 323 Pham Ngu Lao ,Quan 1

호치민 시내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쌀국수 집이 있고 식당마다 제각기 단골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식당은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 손님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유는 이 식당의 위치가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데탐(De Tham) 거리에서 멀지 않기 때문인데, 한국의 배낭 여행자들도 즐겨 찾아 블로그나 여행기에 자주 등장해 호평을 받는 곳이다. 쌀국수가 원래 현지인에게 아침식사로 많이 이용되어 대부분의 쌀국수 집이 아침 7시를 전후해 문을 열지만 퍼뀐은 특이하게 24시간 영업을 해서 심야에도 야식이나 해장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외국인 손님이 많다 보니 메뉴판에 음식 사진과 영어설명이 있어 주문이 편리하다.

우리나라도 명동이나 동대문에 있는 맛집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게 되고 외국인이 고객의 주류가 되면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고 외국인의 입맛에 맞춘 특색 없는 관광식당이 되어 버리곤 하는 예가 있지만 퍼뀐은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맛으로 현지인과 외국인에게 모두 사랑 받는 식당이다.

▲퍼뀐 Pho Quynh 입구 전경.
▲퍼뀐 Pho Quynh 입구 전경.

Pham Ngu Lao거리와 Do Quang Dau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으며 건물 전체가 눈에 띄는 강열한 노란색이어서 처음 방문하더라도 찾기 쉽다. 시내 중심인 중앙우체국 Saigon Central Post Office에서 약 2km 떨어져 있고 여행객이 많이 찾는 벤탄시장에서는 약1Km 떨어져있어 도보 10여분이 걸린다.

▲퍼보찐 Pho Bo Chin(Beef Soup Noodle with Well-done Beef).
▲퍼보찐 Pho Bo Chin(Beef Soup Noodle with Well-done Beef).
▲스페샬퍼 Pho Bo Thap Cam Dac Biet(Special Combination Beef Soup Noodle).
▲스페샬퍼 Pho Bo Thap Cam Dac Biet(Special Combination Beef Soup Noodle).

쌀국수 입문의 초심자이거나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 이라면 퍼보찐 Pho Bo Chin(Beef Soup Noodle with Well-done Beef)을 추천한다. 진한 소고기 국물에 두툼하게 썰은 양지살 수육을 넉넉하게 올린 Pho Bo Chin은 기본적인 쌀국수로 많은 사람이 주문하는 대중적인 메뉴이다.  스페샬퍼는 Pho Bo Thap Cam Dac Biet(Special Combination Beef Soup Noodle)으로 양지살, 도가니, 천엽, 생고기, 고기완자 등 모듬 고기가 고명으로 들어간 쌀국수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만큼 더 진하고 풍부한 맛을 보여준다. 그래서 Pho Bo Thap Cam Dac Biet에 익숙해지면 한가지 고기만 들어간 Pho Bo Chin과 같은 기본적인 쌀국수가 조금 심심하다고 느껴진다.

▲퍼뀐의 쌀국수와 반미.
▲퍼뀐의 쌀국수와 반미.

퍼뀐에서는 반미(Ban Mi)라고 부르는 바케트를 따로 주문해 쌀국수 국물에 적셔 먹기도 하는데, 먹어보기 전에는 ‘과연 쌀국수 국물에 서양 빵인 바케트가 어울릴까?’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바삭한 바케트가 쌀국수의 국물과 어우러져 마치 양식당에서 갓 구운 식전빵을 진한 고기 스프에 적셔 먹는 느낌이랄까? 분명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퍼뀐의 식탁위에 비치된 각종 소스와 양념 중에서 발견한 마늘 장아찌.
▲퍼뀐의 식탁위에 비치된 각종 소스와 양념 중에서 발견한 마늘 장아찌.

원래 베트남에서 마늘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지 모르겠지만 퍼뀐의 식탁 위에서 발견한 마늘장아찌는 모양도 맛도 한국의 마늘장아찌와 다를 바 없었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마늘장아찌를 반찬 삼아 쌀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Pho Bo Chin 60,000동(한화3,000원), Pho Bo Thap Cam Dac Biet 70,000동(한화35,00원), Ban Mi  5,000동(한화250원)


포레(PHO Le)

주소 : 본점 413-415 Nguyen Trai P7, Quan5, 지점 303-305 Vo Van Tan P5, Quan3

첫 인상부터 현지인 맛집의 포스를 물씬 풍기는 집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우선 외국인 손님이 안 보인다. 그리고 여타의 다른 쌀국수 식당과 구별되는 것이 쌀국수 단일 메뉴다. 쌀국수 안에 들어가는 고기의 종류에 따른 구분만 있을 뿐 다른 식당처럼 스프링 롤이나 해물 쌀국수, 꿔이, 베트남 떡 같은 사이드 메뉴가 없다. 곁들여 먹는 사이드 메뉴가 없으니 쌀국수 맛에만 집중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이 집 쌀국수가 가장 진하고 맛있었다.

위치가 시내 중심에서 멀고 주변에 이렇다 할만한 관광 포인트가 없어, 오직 쌀국수 한그릇을 먹기 위해 제법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불편함만 없었더라면 자주 방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포레 입구 전경(사진 왼쪽)과 주방에서 직원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풍경(사진 오른쪽).
▲포레 입구 전경(사진 왼쪽)과 주방에서 직원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풍경(사진 오른쪽).

시내 중심인 중앙우체국 Saigon Central Post Office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져 있어 택시를 이용해야 하며 택시 이용 시 교통체증이 없을 경우 5분 정도 걸린다. 택시 기사에게 주소와 함께 식당 사진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Nguyen Trai 거리에 있는 본점은 2015년 4월 방문 당시, 내부 수리 상태로 영업을 안 했다. 사진은 Vo Van Tan거리에 있는 지점이다.

▲기본 제공되는 숙주와 야채.
▲기본 제공되는 숙주와 야채.
‘로컬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낡은 식탁과 양념통들 그리고 접시가 아닌 쟁반에 제공되는 푸짐한 양의 숙주와 야채들. 호치민 시내 곳곳에 있는 유명 프렌차이즈 쌀국수 식당에서 찻잔 받침만한 작은 접시에 숙주나물과 야채를 내오는 것에 비하면 그 넉넉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Tai 生肉粉 - Well Done Flank Noodles.
▲Tai 生肉粉 - Well Done Flank Noodles.

소고기 국물에 양지살 수육을 올린 기본적인 쌀국수인 Tai 生肉粉 - Well Done Flank Noodles는 다른 쌀국수 식당에 비해 국물에 기름기가 많이 떠 있어서 기름져 보이지만 실제로 맛을 보면 의외로 깔끔한 맛을 보여 준다. 양지수육이 다른 식당보다 두툼해 식감이 좋은 것도 장점이다.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도 진한 국물 밑에 넉넉하게 숨어 있어 눈과 입 모두를 만족시키는 포레(PHO Le)의 대표메뉴다.

Tai 生肉粉 - Well Done Flank Noodles  65,000동(한화3,250원), 베트남 냉차 – Tra Da  2,000동(한화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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