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 청약 경쟁 수백대 1…"은행 예금보다 짭짤"

20억원을 모집하는 데 5757억원이 몰렸다. 청약 경쟁률이 288대1로 치솟았다. 지난해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공모주 청약 당시 열기를 방불케 하는 이 광경은 지난달 'KTB제2호 스팩' 공모 청약 때 벌어졌다. 아직 어떤 기업과 합병을 할지, 합병을 할 수는 있는 건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일단 돈을 맡겨만 두어도 은행 예금보다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서다. 그만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스팩, 공모 청약 경쟁률 100대1 훌쩍 넘어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설립되는 일종의 서류상 회사다. 증권사에서는 스팩을 만들고 개인 투자자에게 공모를 받아 돈을 모은다. 이후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거쳐 증시에 상장하고 비상장 기업을 발굴해 합병하는 절차를 거친다. 선(先)상장·후(後)합병 방식이다.

9일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큐브엔터테인먼트도 우리스팩2호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 상장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상장에 비해 상장 기간을 단축하고 투자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모바일 게임 애니팡을 만든 선데이토즈 역시 스팩을 통해 상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올해 개인들을 대상으로 공모 청약을 진행한 스팩은 경쟁률이 100대1을 훌쩍 넘은 경우가 많다. 300대1에 근접한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KTB제2호 스팩은 아직 합병 기업을 확정하지 않았다. KTB투자증권 측은 "제약,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을 중점으로 합병 대상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증권이 처음으로 상장시킨 SK제1호스팩도 20억원을 모집하는 데 5641억원이 몰리면서 청약 경쟁률이 282대1을 기록했다. KB제7호 스팩도 137대1에 달했다.

요즘 투자자들에게 스팩은 3년 만기인 예금 상품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스팩은 공모 자금의 90% 이상을 한국증권금융에 맡겨 관리하는데 3년 안에 M&A에 성공하지 못하면 증권사는 원금(공모가)에 2.5% 안팎의 이자를 얹어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상장이 되면 공모가 대비 주가가 오르는 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원금과 이자를 받게 되는 안전한 투자 상품인 셈이다.

◇올해 11개 스팩 상장 대기 중

증시에 상장하는 스팩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0~2012년에 상장된 1기 스팩은 총 19개였는데 2014년 한 해 동안 26개로 늘었다. 올해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 스팩은 11개다. 이 중 4개는 심사를 통과해 공모 일정을 확정했다.

스팩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아지자 자문형 랩 상품도 출시됐다. KDB대우증권이 지난달 중순 내놓은 '자문형 스팩 랩'은 전체 운용금액의 절반을 스팩 10개 종목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국고채나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편입할 예정이다.

이번 달부터는 기업이 스팩을 통해 우회 상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2~3개월 정도 길어질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금 회수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것. 지정감사제가 시행되면서 스팩 합병을 결의한 기업도 의무적으로 금융 당국이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외부 회계법인 중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스팩의 장점인 빠른 상장이 지연되고 합병 기업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어 스팩을 통해 상장하려는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다만 부실기업의 우회 상장을 걸러낼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손광수 KTB투자증권 차장은 "스팩에 투자하기 전에 투자 설명서에서 발기인과 경영진 구성을 꼼꼼히 살펴보고 합병 예정인 업종에 전문성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