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뻔해도 사랑스러워… 한 번 더 '휴 그랜트'

몇 년 만에 우연히 들른 단골 식당 같다. 진작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온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익숙한 음식을 내온다. 그런 편안함과 위로가 이 영화에 녹아 있다.

9일 개봉한 '한 번 더 해피엔딩'(원제 The Rewrite)은 휴 그랜트에게 기대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다. 드루 배리모어가 휴 그랜트와 달달한 노래로 사랑을 속삭였던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만든 마크 로렌스 감독이 쓰고 연출했다. 왠지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맞다. 바로 그 이야기다.

키스(휴 그랜트)는 왕년에 영화 '잃어버린 낙원'의 시나리오로 오스카를 받았던 할리우드 스타 작가. 하지만 몇 번 실패작을 낸 뒤 지금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파산 직전 이혼남이다. 오스카를 받을 때 "내 인생에 다시 쓸 필요 없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던 귀염둥이 아들과도 멀어졌다. 재능이란 가르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집에 전기까지 끊기자 미국 동부 시골 대학의 시나리오 작법 강사 일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중년남의 매력적 눈웃음과 저음엔 늘 여자가 꼬인다. 수업은 대충 하고 새 시나리오나 쓸 요량으로 간 소도시에서 그의 인생도 한 번 더 해피엔딩을 향해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휴 그랜트는 쉰 살을 훌쩍 넘겨서도 여전히 팔릴 만한 눈웃음을 짓는 배우다. 미키 루크가 퇴물 레슬러로 나왔던 영화 '레슬러' 등에 출연했던 마리사 토메이가 다시 한 번 긍정적이며 생활력 강한 늦깎이 여대생을 연기한다. '위플래쉬'의 폭군 J K 시먼스가 가족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는 능청스러운 노교수로 나와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불쑥불쑥 치고받는 대사들도 위트가 넘친다. 106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