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욕조·페인트통… 쓰레기로 세워진 '예술탑'

애니시 커푸어, 아이웨이웨이, 올라푸르 엘리아손…. 이 세계적 미술가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빈(Turbine) 홀' 개인전을 계기로 국제적 톱스타가 됐다는 사실. 화력발전기가 있던 5층 높이 거대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꾼 '터빈 홀'은 '현대 미술의 심장'으로 통한다.

올해 이 '터빈 홀 작가'에 선정된 이는 멕시코 작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47). '스타 작가' 타이틀을 예약한 이 작가가 '일생일대의 전시' 직전 선택한 나라는 한국이다. 서울 가회동 아트선재에서 그의 국내 최초 개인전 '자가해체 8: 신병(神病)'이 열리고 있다. 작품 설치를 위해 보름 정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작가는 낙상을 당했다.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고 일주일 입원했다. 지난 10일 장기 입원하라는 의사 만류에도 "곧 태어날 둘째를 맞이하기 위해" 출국하기 직전, 작가는 "한국 관객과 조금이라도 더 소통하고 싶다"며 기자를 만났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연탄재, 밥상, 장판, 부서진 욕조, 찢어진 우산, 페인트통 따위다.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 등 재개발 지역에서 가져온 6t 분량 쓰레기다. '테이트'가 인정한 현대 예술이란다. 잰체하지 않으면 예술을 이해 못하는 족속이 될 것 같은데, 선뜻 소화되지 않는 난해함이 장애물이다.

"미술관 전시팀에게 '철거(demolition) 현장에 버려진 물건을 모아달라'고만 했어요. 그랬더니 '재개발 지역'에서 나온 폐기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 전 폴란드에서도 같은 식으로 전시했는데 그쪽 팀도 대규모 개발 지역에서 철거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쓰레기 더미 앞에서 아픈 얼굴 근육을 씰룩대며 작가가 말했다. "재개발, 부(富)의 불균등한 분배, 불평등, 사회적 묵살이 전 지구적 문제라는 얘기죠."

2007년부터 해당 지역의 '버려진 사물'을 활용해 보여온 설치 작업 '자가 구축' '자가 해체'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내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는 물음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나를 알기 위한 '교구(敎具)'"라고 설명한다. 그는 멕시코시티 근처 화산암 지대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미혼모. 보수적인 멕시코 사회에서 아버지는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이후 노동자로 살며 식모였던 어머니를 만났다. "부모님은 버려진 널빤지, 철판, 손에 잡히는 뭐든 가지고 와 집을 짓고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쓰레기를 활용한 작품은 유년의 가난과 가족의 기억에서 온 것이다.

빈민촌엔 아이 12명이 딸린 아낙 호비타가 살았다. 그녀는 아이를 이고 업고 데모대에 껴서 매일 외쳤다. '땅을 달라!' 호비타는 사회 운동가가 됐다. 정부로부터 땅을 보상받고 집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는 거리로 다시 내몰렸다. 투쟁해 키운 아들이 집을 가져가고 호비타를 내쫓았다. "이 얼마나 기구한 악순환인가요. 부의 불평등이 가족 가치, 사회의 붕괴까지 초래했으니…. 나는 이 서울 하늘 아래도 수많은 '호비타'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전시장으로 가져온 쓰레기는 '한국의 호비타'를 위한 헌사였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을 재현(representation)이라 보지만, 내게 예술은 현실(reality)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는 10월 테이트 전시엔 "공중에 거대한 삼각형 구조물을 세우고 런던 각지에서 가져온 흙으로 채울 계획"이라 했다. 흙에서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무(無)에서 유(有)가 만들어지는 우연한 과정을 보여준다. "오늘날 미술관은 테마파크와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저 즐기러 가죠. 예술은 긴장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봐요. 나는 테이트의 힘을 역이용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