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0 10:02

[시니어 에세이] 놀멍 걸으멍 제주 올레 이야기

일 년에 두 번, 봄가을 여행 비수기일 때 친구들과 제주 도보여행을 한다. 놀멍 걸으멍 느리게 즐기며 걸었던 제주 올레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한다.

저가항공을 이용해 제주에 도착, 4박 5일 일정으로 숙소는 애월읍에 있는 곳으로 잡았다. 여행할 동안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현지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이용해 식사준비를 한다.

아침식사와 점심을 준비하노라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점심은 주먹밥이나 유부초밥 등 가지고 다니기 간편한 것으로 마련하고, 돌아 가면서 식사 당번을 하는데 식사 당번은 그날 점심까지 챙기고 일인당 간식도 챙겨준다. 제주도에서 주로 먹는 간식은 현지 구입한 한라봉, 견과류, 초콜릿 등이 좋다. 물도 가져온 병에 끓여 식힌 물을 각자 담는다. 새벽에 일어나 식사하고 도시락을 싸서 오전 7시에 13코스로 향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 걱정했는데 날씨는 걷기에 좋은 구름 낀 날이다.

이번 도보여행은 제주 올레 13코스를 걸었다. 13코스는 용수포구 절부암 앞에서 저지마을회관 앞까지의 총 14.7km이다. 저지오름은 제주시 현경면 저지리 웃뜨르 마을에 있는 오름이다. 웃뜨르란 중산간 지역을 일컫는 아름다운 제주방언이다. 용수저수지와 숲을 지나 작은 마을 낙천리를 만나고 다시 숲과 오름을 오른다.

제13 공수특전여단 병사들의 도움으로 복원된 총 길이 3km에 이르는 7개의 숲길, 밭길, 잣길들과 저지오름의 울창한 숲이다. 가슴이 설렌다. 13코스는 참 재미있는 길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황톳길과 검은 밭담, 그리고 검은 밭 흙이 13코스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이다.

[시니어 에세이] 놀멍 걸으멍 제주 올레 이야기

구불구불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뒤돌아보고 기도하며 쉬어갈 수 있는 예쁜 집도 있고, 무인 숙소라는 재미있게 생긴 원형 깡통집도 보인다. 긴 숲길을 빠져나오면 마을 청년회에서 누구든지 쉬어가며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지어놓은 원두막보다 작은 아담한 무인 카페도 있다. 이런 예측하지 못한 것을 만나는 것이 또한 여행의 재미 아닌가?

이 길엔 양배추밭, 무밭, 콜라비밭, 브로콜리밭이 많다. 밭엔 잘 큰 브로콜리를 다 수확하여 시장으로 보내고, 새로 싹들이 올라와 밤톨만 하게 브로콜리가 올라와 있다. 넓고 텅 빈 밭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주워 저녁 식탁에 올렸는데 인기 만점이다. 여태 내가 먹은 브로콜리 중 가장 아삭하고 부드럽고 맛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달래도 캐서 저녁식탁에 올렸다. 아줌마들은 원래 이런 것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유채꽃과 청밀보리밭을 지나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이 나온다.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몇 년 전 홀로 여기를 지날 때는 산중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너무 인공적인 시설이 많아져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어 이곳까지 왔는데 도시화 되어 가는 마을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 올레길 중 곶자왈을 제일 좋아한다. 곶자왈이란 숲을 의미하는 ‘곶’과 돌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성된 아름다운 제주방언이다. 나무로 우거져서 뒤엉켜 있는 듯 보이는 울퉁불퉁 낮은 숲 속에 곤한 발을 쉬게 하고, 두 발 쭉 뻗고 땅에 질펀하게 앉아, 물 마시고 축축한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하늘 한번 쳐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숲길에 둘러앉아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다 똑같은 주먹밥에 반찬이니 누가 잘 싸왔나 볼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할 뿐이다. 용수 절부암 앞에서 시작한 도보여행이 13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자 14코스의 시작 지점인 저지마을회관 앞에서 끝났다. 내 두 발을 이용하여 이뤄낸 도보여행. 약간은 힘들고 지치지만 함께하는 일행들이 있어 모든 걸 극복한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도보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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