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0세 초등생들 "생애 첫 소풍, 떨려서 잠 못잤어요"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지난 15일 서울에서 인천 강화도를 향해 전세 버스 8대가 줄지어 달렸다.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2학년 학생 240명이 봄 소풍 떠나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양원초는 50세 이상 만학도(晩學徒)들이 다니는 4년제 초등학교다. 재학생 평균 연령이 70세다. 이날 소풍은 어렸을 때 국민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생애 처음 떠나는 소풍이었다.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시락 든 배낭과 돗자리를 메고 선글라스와 모자로 한껏 멋을 냈다. 발 치수가 적힌 노란 스티커를 미처 떼지 않은 새 운동화를 신은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새벽까지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출발하려니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우리가 복이 많은가보다"고 했다.

빨간 모자를 쓴 7반 양양순(75)씨는 밤에 빌딩을 청소하고 낮에 학교 다닌다. 어릴 적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부모님 말씀에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5남매 키우느라 아이들 운동회, 소풍 한번 따라가보지 못했다. 그는 "어제 새벽 1시 퇴근했는데, 아침 소풍 시각에 늦을까 봐 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날 학생들은 고인돌 마을과 고려궁지, 광성보, 초지진 등 강화도 유적지를 찾았다. 문화해설사가 고인돌 앞에서 "돌을 괴어놨다고 해 '고인돌'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3000년 전 부족장의 무덤이었답니다" 하고 설명하자, 한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나! 3000년 전에 이렇게 큰 돌을 어떻게 옮겨다 놓았나요?" 하고 질문했다. 몇몇은 대열 뒤에서 딴청을 피웠다. 여느 초등학생 소풍과 다를 게 없었다. 소풍 온 열 살짜리 초등학생들과 마주치자 "안녕! 우리도 초등학생이란다" 하고 인사했다.

오후 1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광성보 안해루에 돗자리를 폈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치자 김밥, 보쌈, 약밥, 색색 나물에 과일까지 한 상이다. 5반 이경자(80)씨는 "남동생만 학교 보내고 나한텐 집안일 시키는 엄마가 미워 빨래터에서 방망이 두들기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소풍 와 도시락 까먹으니 옛날 서러웠던 마음에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현재 1~4학년 합쳐 1120명이 다닌다. 입학 정원은 350명인데, 지난해 접수된 원서가 1000장이 넘었다. 졸업 후 중등반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절반 정도 된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므로 학비는 무료다. 류웅상 교사는 "예전엔 어르신들이 '나이 먹어서 뭘 배우나' 했지만, 이제는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학교를 찾아오는 분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90세 입학생도 있다. 전국에 성인 대상 학력 인정 학교는 2011년 44곳에서 2014년 204곳으로 늘었다. 최윤홍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과거에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공부하지 못했던 어르신들도 누구나 초·중등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