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한대수'

한대수(67)처럼 과소평가된 아티스트도 없을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등장한 첫 싱어송라이터였으며 196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이에 견줄 만한 사람은 신중현과 조용필 정도다. 포크로 시작한 그의 음악은 헤비메탈과 블루스, 아방가르드, 프로그레시브 록까지 두루 뻗어왔다.

이 가난한 뮤지션처럼 평생 로큰롤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드물 것이다. 젊어서는 반항과 불만을 풍자해 음악을 만들었고 나이 들면서는 반전(反戰)과 평화, 사랑을 줄곧 노래했다. 자동차도 없고 상표가 드러난 옷도 입은 적 없는 '최후의 히피' 한대수의 40주년 기념 앨범 'Rebirth'가 출시됐다. 1집 '멀고 먼―길'이 1974년 작품이니 작년에 나왔어야 했는데 늦어졌다.

앨범엔 새 노래 2곡을 포함해 총 13곡이 실렸다. 조영남 전인권 김목경 강산에 YB 이상은 호란 이현도 등이 한대수 노래를 다시 편곡해 연주하고 불렀다. 스무 살 때부터 한대수와 작업해 온 기타리스트 손무현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조영남이 부른 한대수 1집 노래 '바람과 나'가 가장 인상적이다. 에코브릿지(이종명)가 어쿠스틱 위주로 편곡한 이 노래에서 조영남은 특유의 내던지는 듯한 창법 대신 가사처럼 '무명무실 무감한' 음색을 들려준다.

김목경 김도균 신대철 손무현 네 명의 기타 명인이 연주한 블루스 곡 'Run Baby Run'이 앨범의 압권이다. 네 명이 한 차례씩 솔로 연주를 들려주는데, 김도균의 땡글땡글한 사운드와 김목경의 정통 블루스 슬라이딩 주법에 이어 우작짝 깨부수고 나오는 신대철의 속주(速奏), 가죽 찢는 발톱 같은 손무현의 테크닉까지 화려무쌍하다. 이제껏 국내에서 나온 기타 배틀곡 중 단연 최고다. 이 곡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서라도 25, 26일 서울 LG아트센터 한대수 공연에 갈 만하다.

목탁처럼 울리는 드럼과 깊은 물처럼 흐르는 첼로 사이를 헤엄치는 호란의 노래 '그대' 역시 뛰어난 편곡과 곡에 밀착된 창법이 돋보이는 노래다. 10대 때 쓴 노래 '옥의 슬픔'을 강산에가 불러 사춘기를 부모 없이 보내야 했던 한대수의 절절한 외로움을 표현했다.

마지막 곡은 앨범에 참여한 모든 이가 한 소절씩 부르고 후렴을 합창한 '하루 아침'이다. 달동네 셋방 시절 명동에 나가 국수 한 그릇 사 먹고 여자 구경하다가 하릴없이 집에 오는 청년 한대수를 노래했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하는 대목에서 절로 아랫입술이 젖는다.

13곡 중 5곡이 한대수 1집 수록곡이다. '행복의 나라로'부터 '하루 아침'까지 1집 모든 곡이 가난하고 외롭고 슬픈 시절을 읊은 노래다. 역시 명곡은 고통을 거푸 증류한 끝에 탄생한다. 알코올 중독 아내와 늦둥이 딸을 부양하며 오피스텔에 사는 한대수가 여전히 뛰어난 곡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