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는데… '下落에 베팅' 투자자 늘고있다

5조4300억원.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올해 빠져나간 돈이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4년간 마(魔)의 장벽으로 여겨졌던 2050을 뚫고 2200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펀드 환매는 멈추지 않고 있다. 게다가 주가지수가 조만간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역(逆)발상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대다수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셈인데, 그동안 주가지수가 반짝 올랐다 내리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주가지수 하락해야 수익 나는 인버스ETF 거래량 늘어

올해 상장지수펀드(ETF) 중에서 주가지수가 하락해야 수익이 나는 인버스 상품의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인버스 ETF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KODEX ETF는 월 평균 거래량이 지난해 12월 6000주에 불과했는데 4월에 1507만주로 늘었다. 월평균 거래 대금도 5400만원에서 1158억원으로 뛰었다.

ETF는 특정 자산이나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정해지는 상품이다.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된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상품은 코스피지수나 코스피200지수가 상승하면 수익이 나도록 만들어진 ETF다. 주가지수 상승분의 1.5~2배 정도 수익이 나오는 레버리지 ETF도 거래가 활발하게 되고 있다.

그러나 인버스 ETF의 경우 수익률이 지수 흐름과 정반대로 움직인다.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론 코스피지수나 코스피200지수가 10% 하락할 때 10% 정도 수익이 나도록 설계됐다. 레버리지 ETF나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이 주가가 하락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헤지(hedge·투자 위험 상쇄)하기 위해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

TIGER인버스 ETF와 KINDEX 인버스 ETF도 개인의 순매수가 늘어나면서 거래 대금이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김형도 한국투자신탁운용 ETF팀장은 "코스피지수가 지난달 2000을 넘은 이후로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금액이 많이 늘었다"면서 "주가지수가 추가로 오르기보다는 조만간 소폭 하락하며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 사람들이 인버스 ETF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어마켓펀드, 올해 1030억원 순유입

증시 비관론자들이 찾는 상품 중 하나인 베어마켓펀드로도 올해 돈이 들어오고 있다. 이 펀드는 선물·옵션 등 파생 상품을 이용해 주가지수나 개별 주식 움직임과 반대로 수익이 나도록 설계됐다.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에서 출시된 베어마켓펀드 7개로는 올해 1030억원이 들어왔다. 코스피지수가 2000 초반에서 1900선으로 떨어졌던 지난해에는 400억원 가까이 빠져나갔었다.

KB스타코리아리버스인덱스(주식-파생)A-EU로 873억원이 순유입됐고 삼성KOSPI200인버스인덱스 1[채권-파생](A), 하나UBS엄브렐러리버스인덱스 K-1[주식-파생]Class C, NH-CA리버스인덱스[주식-파생]ClassA로도 30억원 이상이 들어왔다.

올해 수익률은 -8.9%로 손실을 내고 있다. 코스피200지수 흐름과 정반대로 수익이 나는 구조인데 지수가 올해 9.9%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5조원 넘게 환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순유출된 금액(2조6000억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 올 들어 넉 달 동안 빠져나갔다. 주가지수가 상승하자 환매에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월에는 2800억원이 순유출됐는데 3~4월에는 2조원 이상씩 빠져나갔다.

진성남 하이자산운용 이사는 "투자자들이 코스피지수가 오랜 기간 좁은 범위 안에 갇혀 있던 것을 목격하면서 이런 방식의 투자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서 "코스피지수가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이런 투자 패턴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