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수퍼 영웅들 '공중 群舞'에 141분 액션이 즐겁다

구불구불 미로 속을 폭주하는 수퍼카를 열 대쯤 한꺼번에 원격 조종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두더지굴 같은 지하에서 미사일을 열 개쯤 쏘아 올려 한판 불꽃놀이를 벌여야 한다면?

23일 개봉하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뚜껑이 열렸다. 조스 웨던 감독은 "이 정도로 많은 수퍼 영웅을 한꺼번에 풀어놓고 지휘하는 건 악몽"이라고 했다. 악몽이라면 상당히 성공적인 악몽이다. 이만큼 화려한 액션 쾌감을 141분간 지속할 수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

◇"평화의 길은 하나, 멸종뿐"

"누구나 자기가 두려워하는 걸 만들지. 평화주의자는 무기를, 부모는 자식을." 이번 편의 악당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은 사상 최강의 인공지능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헐크' 브루스 배너 박사(마크 러팔로)가 인류를 지키려고 만들어냈지만, 부모 맘대로 되는 자식 없다. 울트론은 거꾸로 "인류가 사라지기 전엔 진정한 평화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 스타크가 이뤄낸 과학적 성과들을 흡수하고 인터넷을 통해 어디에나 존재하게 된 울트론은 최악의 적이 돼 버린다. "너희가 어떻게 고결할 수 있어. 너희는 모두 살인자야." 번개의 신(神) 토르도 깔아뭉개고 인류의 모든 방어 수단을 비웃으며 울트론은 파멸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난 어두운 구석 없는 놈 안 믿어"

새 수퍼 영웅 '스칼릿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의 정신 조종으로 어벤져스의 영웅들은 각자 마음의 심연 속에 묻혀 있던 어두움과 맞닥뜨린다. 스타크는 자기 잘못으로 어벤져스가 모두 살해되는 환상을 보고, 토르는 자기 때문에 죽은 아스가르드의 친구들 앞에, 블랙 위도우(스칼릿 조핸슨)는 살인 기계로 길러지던 시절의 끔찍한 기억 앞에 다시 선다. 희망은 이들이 용기를 내어 각자의 절망에 맞설 때, 또 서로 손을 잡아 일으켜줄 때 비로소 희미한 끝자락을 드러낸다. 울트론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는 종말을 본 이들이 인류 편에 서고, 옛 친구들이 진용을 추슬러 돌아오면서 반격의 서막이 오른다.

◇군더더기 없는 액션 쾌감

수퍼 영웅들은 발레 군무(群舞)처럼 리듬감 있고 깔끔한 액션 릴레이를 선보인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의 방패를 토르가 망치로 내려치고, 블랙 위도우가 헐크의 등에 실려 하늘을 날면, 무적처럼 보이던 인공지능 로봇도 산산이 부서져 나간다. 천재 유전공학자 헬렌 조 역할의 한국 배우 수현은 울트론 진화의 열쇠를 쥔 중요 캐릭터. 서울 도심에서 영웅들이 격투를 벌일 땐 전동차가 하늘을 날고, '족발 땡기는 날'이며 '노래연습장' 간판이 스쳐 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벤져스 1편은 2012년 5월 미국 개봉 때 2억740만달러(약 2300억원)를 벌어들여 역대 개봉 주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박스오피스 분석가들은 이번 속편이 최소한 전편 기록을 깨뜨릴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관객은 미국(5월 1일 개봉)보다 한 주쯤 앞서 이 영화를 만난다. 한국에서 예매 점유율은 95% 안팎까지 치솟았고 21일 이미 티켓 70여만 장이 팔렸다. 많은 주인공을 건사하느라 밋밋해진 이야기와 캐릭터는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 '팬심(心)'에 기댄 폭발적 초반 흥행 기세가 이 한계를 뛰어넘어 관객을 유인할 수 있느냐가 흥행의 '뒷심'을 판가름할 것이다. 12세 관람가.